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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MBC 계약직 아나운서 복직, 과연 정의일까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이 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상황과 입장이 달랐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일제에 부역했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국가와 민족 앞에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대한 사죄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들 편에 서서 행했던 일들은 저의 잘못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자들은 지탄을 피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 한 전직 MBC 계약직 아나운서가 팟캐스트 방송 <매불쇼>에 출연했다. 그는 회사로부터 재계약이 거부된 상태였다. 그는 끊임없이 억울하다며 항변했다. 자신들과 재계약을 거부한 방송사가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 채용할 당시 재계약 가능성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계약 갱신을 거부한 것은 사측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가 이번에야말로 용단을 내리고 그동안의 어긋남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안광한, 김장겸이 장악한 MBC1년 계약직 인력을 대거 채용했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노조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도인 전 편성제작본부장과 신동호 전 아나운서국장은 합격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내가 책임진다며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이러한 채용 절차에 동의한 것은 응시자 본인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도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들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논리의 핵심은 우리는 적폐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광한, 김장겸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는 강변이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곧 이들이 영혼 없는 회사원이었다는 시인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MBC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채용절차에 응했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자유언론을 위해 싸웠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해직당하거나 한직으로 쫓겨나다시피 했다. 많은 구성원들이 마음의 병을 얻었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병마와 싸우는 언론인이 있다. 이 사실을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공영방송 MBC에 취직하고 싶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해선 안 될 것이다. 그들은 기꺼이 폐허 위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미디어스 등 진보 성향 언론들은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입장을 옹호한다. ‘노동자의 권익은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다. 허나 이것은 산술적 정의이상, 이하도 아니다. 권리는 책임을 다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권리를 따지 전에 먼저 그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고 해도 이것은 참작이 되지 않는 변명일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을 옹호하는 언론들이 자유언론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 때에는 당시를 지배하던 논리가 있었다는 주장을 옹호한다면 언론을 정권의 도구로 사용했던 자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부역했던 자들을 비판하는 논거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단을 받아낸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에 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해고가 부당함을 말하기에 앞서 시민들과 조직 구성원들에게 사죄했어야 한다. 그런 처절한 반성이 있고난 뒤에야 선처를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뽑아주었던 사람들 얼굴에 침을 뱉고 지금 와서 우리는 아무 문제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매불쇼> 마지막 방송에서 복직 기대에 찬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부디 본인 스스로를 정권에 맞서 싸우다 피 흘리고 스러져 간 언론인들과 동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현실인식,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의식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