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교양

전우용 교수께 보낸 페북 메시지

 

  안녕하세요. 전우용 교수님.

교수님 페이스북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일본 연호에 대한 포스팅을 보고 고견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일본 국적의 KPOP 아이돌의 SNS 멘션과 소위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비난에 뒤섞여 논의가 혼탁해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러한 것들을 걷어내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명확한 논지 전개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문제의식은 이렇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연호제도를 문제시하는 것이 불합리한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해당 발언을 한 KPOP아이돌의 죄 없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연호제도 사용은 당연한 것, 문제 삼을 수 없는 것이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에 매우 당혹감을 느낍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연호제도를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깁니다. 멀지 않은 예로, 일본 해상 자위대가 전범기를 사용하는 것을 두고 한일 양국 사이에 이견이 있었고 결국 제주 국제관함제에 일본이 참석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과거부터 사용해왔던 깃발인 만큼 전범기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참배를 하거나 곡물을 바치는 우익 정치인들은 그들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부적으로, 특히 민간에서 연호제도를 시대 구분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연호제도와 일왕을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혼란기마다 일본 지배세력은 천황을 소환했고 정치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의 한 가운데에도 천황이 상징적, 실질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보편적 평가입니다.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지배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천왕을 전쟁과 분리하고 그의 행동을 정당화했습니다. 일왕 스스로도 전쟁의 책임을 당시 군부와 그 상황을 막지 못한 국민의 책임으로 한정하며 거리를 두었습니다.

  연호제도는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후 미군정은 연호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전쟁의 책임이 일왕에게도 있다는 평가가 담긴 조치이면서도, 전시 체제에 균열을 가해야 한다는 의미도 이었던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 특히 기시 노부스케 내각에 임명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나카소네 수상 정부에서 입법 절차를 거쳐 연호제도가 공식 부활합니다. 6년 뒤인 1985년 나카소네는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비판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명분은 전후 정치의 총결산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문화로 자리 잡은 연호제도를 타국이 금지시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깔린 함의에 문제의식을 갖고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피해를 본 국가의 국민이 가질 수 없는 태도일까요. 사나라는 일본 국적의 KPOP 아이돌을 옹호하려는 의지, 소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은 이해할 수 있으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일본제국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맥락을 덮어버리는 현 상황에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교수님의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5월 3일 보낸 메시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페북 활용이 익숙치 않아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일수도 있겠고,

굳이 답을 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을 수 있겠다.

허나 전 교수님 페북을 보면 연호제도를 문제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사나와 자칭 '페미니스트'들을 걷어내고, 연호제도 그 자체에만 한정했을 때,

과연 한국인으로서 비판적 시각을 가져선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