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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사나의 무심함, 그리고 나의 둔감함

4월 30일 트와이스 맴버 사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헤이세이가 끝나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헤이세이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하루 트와이스의 맴버, 사나의 인스타 때문에 온라인이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말을 했든 관심이 없었다. 연예인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사나가 어떤 말을 인스타에 남겼는지 알게 됐고 처음에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나가 일본어로 남긴 말은 일본인들과 공유할 만한 내용이었다. 흔히 인터넷 게시판에 ‘00년생들아 잘 지내?’라며 소통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연호는 일왕 즉위와 연동되지만 반드시 일왕을 염두에 두고 사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도 비슷했다.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개고기를 먹는 비문명화된 민족이라고 폄하하는 것을 비판하듯이 그의 인스타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비판했다. 일본 사람들만의 문화라는 인식이었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에 알 수 없는 찜찜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찜찜함은 답답함으로 심화됐다. 고민 끝에 이 답답함은 한 명의 KPOP아이돌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문제의식은 일본 저변에 깔린 문화를 향해야 한다. 그의 행위에는 악의가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은 낳은 상황은 일본의 배타적 문화가 낳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이 전범국이 아니었다면, 우리 민족을 침략하고 박해하지 않았다면 그가 일왕을 찬양하든, 비난하든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라는 실체가 엄연히 존재한다.

  근래 일왕이 우리 사회에 소환된 적이 있다. (병상에 계신 분을 언급해 마음이 편치 않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이 (위안부 피해자)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한다면 그 한 마디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화재가 됐다. 아키히토 전 일왕의 아버지, 덴노 히로히토는 태평양 전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당시 일왕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그가 일제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일본 내부에서 일왕의 상징성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됐다. 연호제도 정치적 맥락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재 일본 사회 전반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호는 1979년 부활한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뒤 미군은 연호제 공식적 사용을 금지시켰다. 일본 우익세력들은 패전국 이미지 탈피를 원했고 그 일환으로 연호법을 제정하고 연호를 공식적으로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일본인들이 아주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연호에 과거사를 지우려는 정치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내부적으로 체제 안정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아픈 과거사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민족에게 고통을 안길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일본 정부는 과거사를 인정하려는 의지가 없고, 이로 인해 사과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상식과 반하는 발언을 통해 국제적 반발을 초래한다. 이러한 행태는 일본 국내 정치를 위한 위험한 선택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나는 KPOP 아이돌이다. 국적은 일본인이지만 한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연예인이라는 뜻이다. 그가 이러한 논란을 의도하고 메시지를 남겼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다만 이번 해프닝을 통해 문득 깨달은 것은 나의 둔감함이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의 진심을 담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또 독도를 둘러싸고 영토분쟁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일본 국내 정치적 결속을 위해 과거사를 부정하며 다른 민족들의 상처를 다시 헤집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분명히 현재 나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