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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인간 무의식의 생존 본능



(사진 출처 : <라이프 오브 파이> 공식홈페이지 http://www.lifeofpimovie.co.kr/)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시각적 완성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준 영화다. 환상적인 풍경 위에 놓인 파이와 벵갈호랑이 리처드 파커의 모습은 계속해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져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로 올라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링컨> 중 하나가 감독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필자는 이안감독 쪽으로 무게추가 조금 기울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그만큼 <라이프 오브 파이>는 매력적인 영화다.

  앞부분의 인도의 느낌을 주는 음악과 색채가 눈에 띄긴 했지만 다소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느낌이라는 것도 서양 요리에 인도 향식료를 살짝 가미한 정도로 지금까지 봐온 인도 영화의 느낌과는 또 다르다. 나를 포한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 시작한 부분은 아마 폭풍우 장면에서부터 일 것이다. 언론에서도 극찬한 것이 영화의 시각적 아름다움이었던 만큼 영화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풍랑에 요동치는 구명보트, 하늘로 솟구치는 고래, 주인공 파이와 살아 숨 쉬는 벵갈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계속 관객들의 시신경을 자극한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는 시대나 장소의 의미보다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를 아름다운 판타지에 시각적 사실성을 부여한 오락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의 마지막부분에서 반전으로 등장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영화는 아님을 말해준다. 파이가 일본 보험사 직원들을 위해 ‘지어낸’ 두 번째 이야기에는 다리 다친 선원, 어머니, 주방장이 등장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얼룩말, 침팬지, 하이에나를 변형한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하이에나가 다리 다친 얼룩말을 죽이고 침팬지와 다툼 끝에 침팬지도 죽이게 된다. 그리고 리처드 파커가 나타나 하이에나를 죽인다. 여기에서 파이는 사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죽이기까지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었다. 하지만 영상으로 증언된 것이 아닌 파이의 음성으로 증언된 두 번째 이야기를 신뢰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주방장이 다친 선원을 죽이고 파이의 어머니와 다툼이 벌어지자 그녀마저 살해했다. 그리고 파이가 주방장을 살해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파이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실마리를 풀어줄 단서는 프로이드가 ‘도라’와의 상담내용을 기록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도라는 K씨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단순한 키스 사건으로 기억한다. 도라가 당시 K씨의 포옹으로 상체에 가해진 상당한 압박감을 기억한다고 했지만 프로이드는 성폭행 과정에서 K씨의 성기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불쾌감을 건전해 보이는 행위로 대치시켜 기억했던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갖는 기억이 억압되면 왜곡, 대치된 기억으로 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두 번째 이야기에 손을 들어준다면 파이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야만 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외로움 그리고 고독과 싸워내야 했다면 파이에게 가해진 정신적 압박감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강도였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파이의 무의식은 등장인물을 동물로 대치시킨다. 어머니, 선원, 주방장을 침팬지, 얼룩말, 하이에나로 대치시키고  벵갈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등장시킨 것이다. 인도에서 아버지가 동물원을 운영했을 당시 파이는 벵갈호랑이의 위협적인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벵갈호랑이의 위험성을 파이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이는 ‘리처드 파커’가 되어야 했다. 강한 호랑이가 되어 어머니의 복수를 하고 망망대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그리고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처드 파커’라는 자신의 자아를 분리하여 바다에서 살아남는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바다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하지만 멕시코 해안에서 리처드 파커는 사라진다. 이것은 파커가 멕시코 어부들에게 구조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부들에게 구조되는 순간에 파커는 리처드 파커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파이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자아와 이별하며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는 파이의 생명, 삶에 대한 영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파이가 살기 위해 취한 방법에 관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