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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소적 사랑을 그린 고독한 영화 "La Collectionneuse"(수집가)



  <수집가>는 어떤 편의 우위를 지지하거나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로메르 감독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아드리안과 아이데를 영화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두 인물의 만남을 아드리안의 시각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것은 18세기 루소의 고민이 담긴 상황이다. 루소는 독립적인 자연인과 사회에 포함된 인위적인 인간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루소에게 자연 상태란 다른 인간들과 만날 일이 없는 절대적인 독립,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사회 상태로의 전이는 인간이 축적하기 시작한 부에 의해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의 본성을 상실해간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아드리안은 루소의 자연인 개념을 전적으로 따르려 한다. 프롤로그Ⅲ에서 아드리안은 여자친구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한다.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메르 감독은 인물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아드리안의 손에 들린 루소전집을 클로즈업한다.

  아드리안과 반대로 아이데는 인위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프롤로그Ⅰ에서 카메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몸, 즉 겉모습에 집중한다. 루소에게 겉모습은 실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한 거짓이다. 루소의 주장은 인간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실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고 이런 분리는 인간의 악덕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고백처럼 아이데는 자신의 참모습은 가린 채 수많은 남자들을 만난다. 아이데는 만나는 남자들을 통해 그 무엇을 끊임없이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드리안은 자신과 다른 아이데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것은 아드리안이 진정한 자연인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소의 자연인 개념은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고립을 전제로 하는데 아드리안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후원자를 만나야 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자연인이 되기 위해 다니엘을 멘토로 삼고 그와 교류한다. 아드리안이 관심을 보였음에도 ‘쉬운 여자’ 아이데는 아드리안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아드리안의 자연인 지향적 삶을 아이데가 닮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만들어내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다. 자연인을 지향하는 아드리안이 타인과 사랑을 하려할 때 발생하는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의 충돌이다. 아드리안은 자신을 닮아가는 아이데를 보며 자신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봤지만 정작 아드리안을 닮아가는 아이데는 그와 거리두기를 한다. 샘의 별장에 아이데를 두고 시내에서 머무는 동안 아이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커져 감을 느낀다. 자연인을 지향했던 샘이 변해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카메라는 거리의 사람들을 비춘다.

  아드리안은 자신의 논리적 요새를 무너뜨리고 아이데를 받아들이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자연인의 모습을 잃는 것에 불편함을 가진다. 현대 사회에서 자연인일 수 없는 인간적 고뇌를 겪는 그는 결국 자신의 처음 이상을 따른다. 루소의 자연인에게 사랑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 것인가? 영화에서 아드리안은 아이데와의 이별을 통해 루소의 자연인에 한걸음 더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