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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오파드>에 나타난 멜로드라마적 특징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포스터. 파브레지오와 안젤리카의 볼룸댄스를 통해 주인공과 새시대의 만남을 표현했다.)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에서 벤 싱어는 멜로드라마가 공감을 일으키는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잘못된 사랑과 결혼의 장애, 세대 간 마찰과 메울 수 없는 모성 공간의 고난들, 인습의 편협함과 가부장 구조에 직면한 여성 자립의 어려움과 존엄성,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희생의 애처로운 숭고함을 다룬다고 했다. 또한 멜로드라마가 기존의 체제의 붕괴와 이데올로기 역학이 합치하며 등장했다. 그런 면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는 멜로드라마라 할 만하다.

  벤 싱어는 멜로드라마를 정의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했다. ‘파토스’, ‘과도한 감정’, ‘도덕적 양극화’, ‘비고전적인 내러티브 구조’, ‘선정주의’라는 다소 의미상 중첩될 수 있는 요소를 제시하고 이것들을 통해 멜로드라마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먼저 ‘파토스’는 강한 연민의 감정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민을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일종의 명백한 불행,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불행이, 가당치 않은 사람에게 닥쳤을 때 느끼는 일종의 고통”으로 정의했다. 멜로드라마를 보며 관객들은 대성통곡을 하는데 이것은 자신에 대한 비애를 의미한다. <레오파드>에 등장하는 파토스는 영화 속에서 구시대와 새 시대가 충돌하는 한 가운데 놓인 파브레지오가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관객들이 파브레지오와 동일한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가 놓인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있다. 파브레지오와는 다르게 그의 조카 탄크레디는 시대에 순응하고 자신을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탄크레디는 파브레지오에게 혁명군에 가담하겠다고 한다. 탄크레디는 지금의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가문의 몰락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탄크레디의 모습은 지난 세대가 지키고자 했던 미덕의 소멸이이 아닌 새 시대의 탄생을 의미한다. 젊은 탄크레디와 나이든 파브레지오의 대비는 그가 새 시대를 맞이하며 느꼈던 상실감과 허무함을 부각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무도회장면에서 현기증을 느낀 파브레지오는 저택의 조용한 방에서 프랑스의 반시대적 작가 그뢰즈가 그린 <선한 사람의 죽음>에 빠져든다. 그림 속의 남자는 파브레지오와 많은 부분 상통한다. 그림 속의 선한 사람이 임종하는 모습은 추레하다. 자신이 믿던 신념과 가치가 상실한 사회에서의 마지막 역시 아름답지 못할 것이라는 파브레지오의 걱정이 눈빛에 담겨있다.

  두 번째로 ‘과도한 감정’은 감정선을 움직이는 절박함, 긴장감 그리고 시련으로 고조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파토스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감정이 항상 파토스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파브레지오의 아내 스텔라는 사건마다 과도한 감정을 표출한다. 스텔라는 가르발디가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통곡한다. 그리고 탄크레디가 콘첸타와 결혼하지 않고 안젤리카와 결혼하려하자 역시 격정적 분노한다. 반면 새 시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폭발시키며 과도한 감정을 드러낸다.

  ‘도덕적 양극화’는 선과 악의 극단적인 도덕적 양극화, 도덕적 절대주의와 명료함 흑백 모티브를 말한다. 영화 속에서 도덕적 양극화 역시 드러나는데 이것은 개인의 가치판단과 관련이 있다. 파브레지오를 중심에 놓고 보면 혁명이전의 시대의 가치와 혁명이후의 시대의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혁명 이전까지 살리나 백작의 가족은 오래된 관습을 지키고 종교에 의지하며 가족 간의 결속을 중시했다. 하지만 혁명 이후의 모습은 이것들과는 대비된다. 이러한 대비는 역시 무도회장에서 드러난다. 벤 싱어는 근대화의 중요한 요소로 개개인의 원자화를 이야기했다. 무도회장에 가득 찬 사람들은 제각기 행동한다. 식사에서 예절은 사라지고 누가 밥을 먹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무도회장에서 마주하고 있는 신흥 세력의 경박한 모습을 보며 파브레지오는 절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치판단은 개인이 내리는 것이니 만큼 파브레지오의 입장에서의 설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브레지오가 마지막까지 가치있게 생각한 것은 왕가의 전통이 가진 미덕이다.

  멜로드라마는 서사적 연속성보다 생생한 감흥에 더 치중함으로써 에피소드적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멜로드라마의 ‘비고전적인 내러티브 구조’라고 한다. <레오파드>가 비고전적 네러티브 구조를 갖는 이유는 영화의 전개가 파브레지오와 감정선의 변화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파브레지오는 가르발디가 상륙했을 때 안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해 기대한다. 하지만 새 시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스스로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좌절감을 느낀다. 영화의 진행은 파브레지오를 중심으로 놓은 상태에서 사건의 많은 부분을 스크린 뒤로 감춘다. 오직 파브레지오의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안젤리카의 도발적인 눈빛. 거침없는 새시대의 도래를 떠올리게 한다.)

 

  ‘선정주의’는 육체에 위험을 가하는 스펙터클, 근사한 광경, 스릴, 폭력, 액션의 강조로 정의된다. <레오파드>에서 이목을 끄는 것은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는 선정적 미장센과 음악이다. 특히 마지막 무도회 장면에서 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의복과 저택의 실내를 꾸민 것,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음악은 가히 선정적이다. 이것은 노웰 스미스가 이야기했던 ‘전환성 히스테리’와도 연결된다. 전환성 히스테리란 억압된 멜로드라마의 심적 에너지와 감정들이 신경증처럼 다른 표현 경로를 통해 배출구를 찾는데, 특히 부자연스러운 미장센이나 과장된 음악을 통해 유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심적 에너지와 감정이 억압되는 이유는 그것이 지배적인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요구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레오파드>에서는 파브레지오가 느꼈던 심리적 갈등은 화면에 등장하는 엄청나게 화려한 의상과 장식들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음악을 통해 나타낸다. 특히나 무도회장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리가 저택을 휘젓는 모습은 파브레지오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클레이 헤밀턴은 “멜로드라마가 재현하는 것이 바로 불변의 진리”라고 했다. 영화가 시작하며 카메라는 시칠리아의 저택으로 다가간다. 그곳의 오래된 동상과 낡은 건물 외벽은 그 가문의 역사를 말해준다. 저택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살아온 가문이 혁명적 시대의 조류에 부딪힌다. 여기에서 살리나 공작은 자신이 평생 지켜온 전통의 미덕을 새로운 시대에서 찾을 수 없기에 절망한다. 벤 싱어는 “멜로드라마는 현실의 중요한 양상에 조응한다”고 했다. <레오파드>가 현재의 우리의 마음속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급변하는 세상과 가치관의 변화를 적응해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레오파드>의 파브레지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