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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스빈더는 눈으로 주변 사회를 바라보고 그것을 응축해 영상으로 담아내는 감독이다. 파스빈더는 과거 나치 치하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고 나치의 몰락 이후에는 사회의 기득권을 잡아 자기합리화를 했던 기성세대들에게 반기를 들었다.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그가 15-16세 경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느꼈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영화이다. 당시 파스빈더의 아버지는 생활을 이어가지 위해 외국 노동자들에게 세를 주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을 그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독일어로 표현된 영화의 제목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이것은 독일에 살며 엉터리로 독일어를 배운 모나코인 알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잠식당한 사회적 약자 알리를 그러한 상황에 처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당시 독일사회에 팽배해 있던 외국인에 대한 가치절하와 그 커뮤니티에서 살아가야 했던 에미의 불안이 영화에서 악으로 존재한다. 빌딩 청소부로 생활을 이어가던 에미는 비오는 어느 날 이국적 음악이 흐르는 술집으로 들어온다. 식당에 먼저 들어와 있던 손님들, 즉 외국인노동자들의 아지트에 나타난 중년의 독일 여성 에미는 순간 이방인 속의 이방인이 된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에미에게 먼저 춤을 청한 것은 알리였다. 팍팍한 독일의 삶에서 외국인 노동자 알리의 처지도 처지였지만 빌딩 청소를 하고 속한 커뮤니티에서도 멸시받던 중년의 에미였기에 그녀에게 친절했던 알리에게 끌렸던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힘겨운 삶 속에 만난 두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은 것은 에미를 둘러싸고 있던 커뮤니티의 편견이었다. 독일 내에 하층민으로 치부 당하던 외국인이 독일인 커뮤니티에 등장했을 때 독일인들의 반등은 거부와 멸시 그 차제였다. 에미의 자식들조차 외국인 노동자와 어머니의 결합은 분노를 동반한 거부로 나타난다. 하지만 알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오랜 시간 살아왔고 앞으로도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에미의 변화하는 태도였다. 알리와 결합할 때 다짐했던 에미의 의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진다. 이것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에미 주변 커뮤니티에서 알리를 받아들였던 것과 알리에 대한 에미의 태도변화가 대비를 이루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알리에게 있어 정원은 같은 처지에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던 술집이었고 에미에게는 자신의 집과 그녀를 둘러싼 커뮤니티였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에미는 낯선음악이 흐르는 알리의 정원에 들어간다. 들어온 직후의 적대감을 먼저 깬 것은 알리다. 같은 지역에서 힘겹게 살고 있던 그녀를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이다. 술집에서 평온을 얻을 수 있었던 에미와는 달리 알리는 에미의 정원에서 평혼할 수 없었다. 당시 독일사회에 만연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장벽은 두 사람이 넘기에 너무 높았던 것이다. 알리를 소개하던 날 자식들과 사위가 알리와 에미에게 보인 반응은 알리의 표현대로 ‘개’를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식들과 사위의 반응에서 독일 사회에 존재했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거부감이 여실이 묻어난다. 알리와 에미는 에미의 정원에서 행복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서서히 지쳐갔다.

  결국 알리는 에미의 정원을 떠난다. 독일인들이 그들 사회에 침입한 이방인에게 보인 거부와 어쩔 수 없이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하는 에미의 태도의 변화를 지켜보는 알리의 영혼은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알리가 자신의 정원을 떠난 것을 알게 된 에미는 다시 알리의 정원을 찾는다. 그 곳에는 에미와 에미를 둘러싼 사회의 폭력에 의해 망가진 알리가 있었다. 하지만 알리는 다시한번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둘의 진실된 화해를 통해 다시 사랑을 확인할 것이라는 관객들의 기대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쓰러진 알리의 모습을 통해 좌절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겪는 스트레스로 인한 위궤양이라는 의사의 말을 통해 알리가 받은 고통이 당시 독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보편적 요소임을 감지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잠식되는 동안 알리가 끝까지 지켰던 도덕적 가치는 사랑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에미가 속한 사회와 에미가 보인 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에미의 손을 다시 잡은 것이다. 에미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 겪었던 고통에도 침묵했고 다시 사랑을 확인한 뒤에도 알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에미는 알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알리의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의 사과는 알리를 되돌리지 못한다. 파스빈더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알리의 영혼이 잠식된 것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측은한 눈으로 약자들을 바라본 파스빈더의 시각이 담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 중 누구라도 불편한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