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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기 위한 그리고 지키기 위한 선택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마리아와 헤르만은 전쟁의 공포가 도시를 뒤덮는 가운데 어렵사리 공식적 부부로서 승인을 받는다. 도시는 먼지와 파편으로 얼룩지고 독일의 패망을 알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 광기와 고통의 소리 위에 순결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해진다. 참혹한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탄생한 인연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패전국이 된 독일은 많은 것을 잃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피폐한 삶을 이어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마리아 역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헤르만을 만나기 위해 살아남아야 했다.

  전후 독일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방법이 있다. 마리아 역시 옳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마리아는 보건증을 얻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알아온 의사를 찾아간다. 보건증을 얻기 위해 찾아온, 즉 옳지 않은 길로 빠져들기 시작한 마리아를 보는 것은 의사로서 그리고 그녀의 지인으로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반면 알몸으로 등장의 마리아의 눈빛에는 그 어떤 주저함도 없는데 그녀의 마음속에는 벗었다는 부끄러움보다 헤르만이 돌아올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가난의 옷을 벗어버리고 ‘경제가 만든 마타하리’로의 변신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자신과 헤르만을 연결하는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녀를 흔드는 두 번의 경험을 한다. 하나는 베티의 남편 윌리로부터 헤르만의 전사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오스왈드의 유언장을 통해 남편과 오스왈드의 거래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 마리아에게 남편의 전사 소식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편과 오스왈드와의 거래 사실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헤르만과의 사랑이 소멸했음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모든 행위의 근간인 사랑의 상실을 통해 그녀는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때마다 클로즈업된 마리아의 손목이 등장하는 데 그녀의 손목에 흐르던 것은 뜨거운 피가 아닌 차가운 물이다. 헤르만 상실의 경험은 그녀를 더욱 차갑게 만든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접한 마리아는 그길로 미군 빌을 찾아가고 사랑의 소멸을 확인한 그녀는 자기파괴를 선택한다. 미군이 준 담배가 오스왈드가 남긴 유산으로 변화되기까지 마리아의 영혼은 서서히 잠식되어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마리아의 저택에 남겨진 마리아와 헤르만의 대화에 독일과 헝가리의 1954년 월드컵 결승전 중계 사운드가 오버랩 된다. 그리고 마리아와 헤르만이 가스 폭발로 흔적 없이 사라진 후에도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계속된다. 파스빈더는 전후 독일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마리아와 헤르만의 비극에도 독일은 앞으로 전진해왔다는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