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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임감의 부재와 미완성의 사랑 <모니카의 여름>

 

  스톡홀름의 봄 날, 모니카는 해리의 손을 잡아주었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해리의 볼에 남겨진 키스마크 만큼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해리와 모니카가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두 사람 모두 고단한 현실로부터의 피난처를 찾고 있었다. 해리는 8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함께 쓸쓸한 일상을 이어왔다. 해리의 직장이었던 그릇 공장에서는 늘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모니카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모니카 는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술을 마시면 손찌검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힘든 생활을 했다. 쳇바퀴 돌아가는 듯 반복되는 고된 삶 속에서 만난 해리와 모니카는 서로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다.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했던 둘만의 여행은 해리와 모니카를 자유롭게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나가 시달리지 않아도 됐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먹고 자고 즐길 수 있었다. 해리와 모니카는 그런 일탈이 만족스러웠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편한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해리와 모니카는 자유로운 여행 속에 그들의 꿈같은 미래를 그린다. 모니카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해리는 그 사실을 곧장 현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니카는 현재의 자유로움을 좆기로 한다. 하지만 그런 결심도 현실적인 제약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해리와의 여행을 통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 앞에 다가오는 것은 배고픔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농장에서 고기 덩어리를 훔쳐 달아나는 중에 모니카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훔친 고기를 뜯어먹는다. 자유로움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모니카의 결심이 원초적인 욕구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두려움 속에 갈대숲을 헤매던 모니카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결국 모니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들의 여행도 끝이 났다. 마음을 다잡고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해리와는 달리 모니카는 지루한 삶을 벗어나는 꿈을 꾼다. 해리와 이룬 가정이 꿈꾸던 것처럼 로맨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니카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 보다는 보트 갑판 위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다방, 또 다른 일탈의 현장에서 모니카는 스크린 너머의 관객을 정확히 응시한다. 젊을 때 즐겨야 한다고 말하던 모니카는 용서받지 못할 또 다른 일탈을 당당히 드러낸 것이다. 봄바람에 사랑이 꽃 피었고 뜨거운 여름에 불같이 사랑을 했다. 가을이 되어 사랑이 시들기 시작했고 겨울이 되어 사랑이 져버렸다. 소중한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모니카의 결혼은 이별로 매듭지어졌다. 모니카가 곁에 없는 추운 겨울, 거울에 비친 해리는 한 여름 자유로웠던 모니카와의 추억을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