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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식정보 프로그램의 뒷모습 까발리기 <트루맛쇼>

 

 

음식정보 프로그램의 뒷모습 까발리기 <트루맛쇼>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대한민국 방송에서 맛은 맛이 갔다. 아니 방송이 맛이 갔다. 시청자가 뭘 보든 소비자가 뭘 먹든 아무 상관없다. 우리에게 <트루먼 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

 

2010년 발표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하루 515개의 식당이 창업하고 474개가 폐업하는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살벌한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한 식당들의 처절한 투쟁에 맛의 순수함은 사라져버렸고 미디어와 식당의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됐다.

 

2010년 3월 셋째 주 지상파 TV에 나온 식당은 177개. 1년으로 환산하면 무려 9,229개다. 이 중 협찬의 탈을 쓴, 사실상의 뇌물을 주고 TV에 출연한 식당은 몇 개나 될까? 대박 식당을 위한 미디어 활용법 실험을 위해 직접 식당을 차렸다. 식당 이름은 ‘맛’ 영어로 ‘Taste’다. ‘맛’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딱 하나다, 몰래 카메라 친화적 인테리어! 모든 거울 뒤엔 카메라가 숨어있고 식당 구석구석까지 CCTV로 촬영된다. ‘맛’은 실제 영업을 하는 다큐멘터리 세트다. 평범한 식당을 TV추천 맛 집으로 변신시키는 돈의 기적은 가능할 것인가?

 

미디어와 제작자의 탐욕과 조작에 관한 블랙코미디.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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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재미있게 본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직 MBC 교양국 PD였던 김재환 감독이 그동안 방송되었던 음식정보 프로그램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들췄다. 그동안 공중파 방송사들이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던 맛집 정보의 허구성을 폭로한 것이다. 2012년 2월 초 네이버 영화 평점은 9.36, 공감을 불러일으켰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보수적 철옹성으로 그 내막을 감추고 이미지를 곱게 포장했던 방송사들에 대한 전직 PD의 폭로였던 것이 공감의 폭을 넓혔던 첫 번째 이유이고, 제작과정의 부조리를 밝히는 과정에 현재 방송중인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에 참여하며 내막을 상세히 밝혔던 것이 공감을 일으킨 두 번째 이유이다. 마지막은 완성도. 재미가 있다. 실재하는 상황(맛집 프로그램)을 두고 제작(트루맛쇼)을 하지만 방송사의 제작행태를 익히 알고 있던 김재환 감독이 저 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며 조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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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트루맛쇼> 역시 인터뷰와 각종자료 제시로 구성된다. 외식 업체 관계자나 음식점 업주, 맛 칼럼니스트들이나 실제 맛집 프로그램 작가와의 대화내용이 등장한다. 재미있는 요소는 <트루맛쇼> 제작팀이 방송출연을 원하는 음식업체로 가장하여 실재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점이다. 경기도 일산의 중심부에 자리 잡았던 이 음식점의 이름은 ‘맛(taste)’다.

 

  점포를 임대해 보통의 식당과 같이 내부 인테리어를 하고 식당 요소마다 카메라를 설치해 맛집 프로그램 제작과정의 부조리함을 그대로 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트루맛쇼>제작팀이 엑스트라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맛집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1. 방송협찬대행사(브로커)에 연락한다.

  2. 견적을 받는다.

  3.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프로그램 협조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불사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면 얼마나 줘야 출연이 가능할까? <트루맛쇼>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500만원을 프로그램 제작사 측에 제공해야 출연이 가능하다. 돈만 들이면 생면부지 유명 연예인도 단골로 만들어 방송에 낼 수 있으니 세상 참 편해졌다. <트루맛쇼> 제작팀도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견적을 받고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방송출연을 위해 ‘맛’이라는 식당 간판을 내리고 ‘핫’이라는 이름의 청양고추 전문식당으로 탈바꿈해야 했다. 식당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식당의 메뉴까지 새로 만들어냈다. 맛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비쥬얼과 리액션만이 있을 뿐이다. 식당 핫이 방송되던 날 그 방영분을 보는 <트루맛쇼>팀의 모습에 허탈함과 어떤 박탈감이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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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루맛쇼>를 보는 관객,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쾌감과 함께 이어지는 허탈함일 것이다. 대중들이 가장 가깝게 여기고 신뢰하는 매체로 TV를 들 수 있다. 그래서 TV에 등장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의심이나 검증 없이 그대로 신뢰해왔다. 그러한 공중파 방송의 권위에 대해 <트루맛쇼>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것도 방송사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적 방송국 권위의 붕괴는 마치 엄청난 힘을 가진 악에 대항해 싸워 이기는 정의의 용사를 보는 것과 같은 쾌감을 준다. 이후 이어지는 허탈함은 ‘속았다’라는 깨달음이다. 시청률을 사수해야하는 방송사와 대박을 노리는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음식점들이 만나 탄생한 사기극이라는 사실과 음식이라는 (생활, 생존에 필요한)기본 요소의 의미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불편함이다. 그리고 또다른 불편한 진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다.

 

 

  위에 보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의 이름은 ‘Frode & Inganno’.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이것은 ‘조작과 기만’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방송에 어떻게 비춰지냐에 따라서 대박 ‘맛집’이 될 수도 있고 막되먹은 ‘불량식당’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곧 방송사의 막강한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트루맛쇼>을 통해 밝혀진 음식정보 프로그램 제작과정의 한 단면은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