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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자유당은 계획이 다 있구나(ft.안녕황교안)

(황 대표의 표정에서 왠지 모르게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6일 서울대 특강)

 

  자유한국당이 실질적인 총선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번 정기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사실상 쫓겨났습니다. 본인이 의원들 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는데 곧바로 황교안 대표가 묵살했습니다. 최고위원회의 현장에서 나 대표를 내보내고 바로 임기연장 불허를 결정했다고 하죠. 그만큼 당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이고, 황 대표 입장에서는 자신을 향한 책임론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나 대표를 희생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8일 간의 단식과 나 대표 연임 불허로 겉보기에 당내 기강은 잡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불만 목소리를 잠재운 것처럼 보이지만 황 대표의 당내 입지는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입니다.

  황 대표의 최근 정치행보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은 계획이 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자유당 입장에서, 더 정확히는 자유당 의원 개개인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선 여부일 것입니다. 만약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제 법안이 통과된다면 자유당은 매우 불리한 구도에서 총선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일단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되는 것 자체가 정부여당의 성과입니다. 자유당은 패트 지정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7년 동안 사라졌던 동물국회를 부활시켰습니다. 그 이후 여야 4당의 수많은 제의에도 자유당은 논의테이블에 앉지 않았습니다. 자유당 지도부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저지였습니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 국회법이 정한 기한을 모두 충족해서 패트 법안이 처리된다면 여론은 정부여당의 승리로 기억할 것입니다. 지역구 의석 축소가 최소화 되더라도 자유당 의원들은 지난 지방선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할 것입니다.

  만약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가 실시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당의 경쟁력입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1번당이 2번당 제끼면 1번당이 승리하고 2번당 후보가 1번당 후보 제끼면 당선되는 구조였습니다. 상대당 혹은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안 되는 수만가지 이유가 동원되는 뺄셈정치였습니다. 다음 총선부터 연동형비례제 요소가 도입되면 자당이 다른 당들보다 어떤 우위를 갖는지가 중요해집니다. 3, 4의 대안이 등장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1, 2번 당도 경우에 따라서는 제3, 4 당으로 추락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물론 다음 총선에서 이렇게 극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커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미를 갖는 선거제 하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점은 자유당 입장에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현재 패트 법안 통과 저지를 목표로 삼은 자유당, 바른미래당 변혁 모임 의원들과 나머지 정치세력들이 명확한 대치전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패트 법안이 처리된다면 이 선은 오롯이 그들에게 부담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당 의원들은 변화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를 내세울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인적쇄신입니다. 지도부 책임론을 물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외부 인사를 영입해 위원장을 맡기는 것입니다. 황 대표의 성정으로 보아 극한 갈등보다는 무난한 권력이양 그림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황 대표는 대선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볼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황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직접 영입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총선국면에서 황 대표의 역할론은 영향력이 없어졌을 뿐더러 오히려 존재자체가 악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독교 신자 10%도 동의하지 않는 전광훈 세력과도, 박근혜 석방을 요구하는 우리공화당과도 선거를 치를 수 없습니다. 자유당이 미래를 기대한다면 중도층에게 호감을 얻음으로써 외연을 확장해야 합니다.

  최근 황교안 대표의 비합리적 행보를 보며 황 대표의 역할 종료와 그로부터 촉발될 정계개편 가능성을 떠올립니다. 골수 친박계 인사들을 제외한 주요 인사들은 상대 정치세력에게 비 온 뒤 더 굳어진정치 토양을 마련해준 황 대표가 절대 곱게 보일 수 없습니다. 황 대표의 정치 시계가 멈출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만이 자유당 구성원들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는 유력한 시나리오라는 것입니다. 자유당이 살기 위한 자체적 몸부림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상태를 유지해도, 당내 갈등을 드러내 분열해도 자유당에게 이번 총선은 이총망’(이번 총선은 망했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당에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을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