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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kbs 시사직격 팀의 착각?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사직격 팀의 가장 큰 잘못은 토론의 패널들이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이었습니다. 단순히 산케이, 조선일보 기자가 출연했다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양국을 대표해서 산케이, 아사히, 조선일보, 한겨레 특파원출신 기자들이 출연했습니다. 이들은 각각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현재 양국의 경제-안보 갈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입장, 지면의 입장 혹은 자국 정부 입장을 이야기했고 적극적으로 논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kbs가 제3국의 방송국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korea'라는 상징을 방송사 이름에 달고 있으면서 한일의 첨예한 갈등을 중립적으로 드러내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먼저 고민했어야 합니다. 이것은 kbs 시사직격이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 편을 들어야 했다는 지적이 아닙니다. 해당 방송에서 양측(패널 구성도 본질적 균형에 부합하지 않지만)의 의견이 동등하게 전달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효과는 일본의 해명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실제 대화 방식도 그러했습니다. 아사히의 나카노 기자는 한국말로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한국기자들 조차 일본말로 질문하거나 반박하는 모습이 다수 등장했는데요. 심지어 한국말로 말하면서 '아베 상'이라는 호칭을 쓰는 모습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일본 입장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결국 어떠한 메시지만 남을까요. '일본이 독일과 같이 전쟁범죄를 사죄하지 못하는 데에는 정치적, 역사적으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는 인식을 남깁니다.

  더불어 배경, 분위기, 상황설정 등 네러티브 구성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막걸리집에서 한일 기자 네 사람과 진행자가 만나서 가볍게 술을 한 잔 하면서 양국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풀어가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일본 제국주의, 전쟁범죄, 강제징용, 위안부 등의 소재를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풀어가는 것이 적절했던 것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오히려 양국 기자들이 마주 앉아서 첨예한 갈등상을 논하지만, 결국 술잔을 부딪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으로 수렴되는 네러티브 구성입니다.

  현재 한일 양국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규정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사 해결 문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한일의 위상이 극명하게 나뉩니다. 한쪽은 가해자이고 다른 한쪽은 피해자입니다. KBS 시사직격은 이러한 구도 대신에 동등한 협상의 대상자로 패널들을 규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일본 나름의 입장이 있고 우리 정부는 우리 정부 나름의 입장이 있다. 양 쪽 다 잘못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한일 양국에 모두 좋지 않으니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남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일본 정부나 시민 입장에서 보기 좋은 방송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kbs 시사직격이 분명히 해야 했던 것은 미래는 과거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반성 위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행자인 이재성 변호사는 출연자가 어떠한 입장을 표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프로그램 취지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는데요. 출연자의 메시지가 프로그램 맥락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조직하는 것이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책임입니다. 최근에 kbs가 많은 논란에 직면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태도로 넘기지 말고, 여러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깊게 토론하고, 여러 의견을 공론화하는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