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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타사 기자들에게 조롱당했다는 한겨레 기자들에게

 

  한겨레 젊은 기자 31인이 한겨레 국장단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요는 최근 몇 주 동안 조국 인사검증 국면에서 데스크가 일선 기자들의 검증 기사를 막았다는 비판이다. 이들은 한겨레 수뇌부가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되는 보도를 막았다고 지적한다. 부당한 취재 개입이 있었다면 필히 부당함에 항의하고 이 사실을 시민들에게 고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점이 있다. 성명서에 참여한 한겨레 젊은 기자 31인은 현재 조국과 그 가족들에게 가해졌던 보도 광풍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만약 한겨레 데스크가 용인했다면 그 광풍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 자신하는가.

  성명서 중 이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타사 기자들은 손발이 묶인 한겨레 기자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한다.” 사실 이 점이 가장 불편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길 바란다. 현 취재시스템 상 출입처 기자단에 포함된 타사 기자들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언론의 보도 광풍에 합세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라면 그 지적의 명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겨레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올해 117일자 미디어오늘의 기사 한겨레 기자들이 떠나고 있다에 한겨레 내부의 뒤숭숭한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당시 시점을 기준으로 기자 9, 경영관리직 2명이 이직을 선택했다고 전하면서 사원들의 잇따른 이직은 회사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한겨레 노조의 분석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시민들이 한겨레 기자들에게 명예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세월호 사태 이후,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언론에 대한 불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불만의 기저에는 진실 보도 준칙이 기사에 담기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상반되는 양쪽의 입장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상 어느 주장에 더 신빙성이 있는지까지 나아가는 것이 지금 언론의 책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언론사일수록 기존 시스템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언론사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과거의 관습을 답습했다. 때문에 언론사 특히 기자에 대한 시민의 인식은 부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기자들은 난파선 고양이와 같은 처지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언론 시스템을 통해 탄생한 보도는 더 이상 시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기사가 가치를 가지려면 시민들이 취합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을 넘어서 정보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맥락 속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른 기자들과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단순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고등은 이미 빠르게 점멸하고 있다. 난파선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결국 난파선 고양이가 되었다 https://the-persimmon-tree.tistory.com/792)

 

 

 

(아래는 한겨레 기자들의 성명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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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 편집국장 이하 국장단은 조국 보도 참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

 

<한겨레>가 부끄럽다.

 

  5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비판하는 강희철의 법조외전칼럼이 국장의 지시란 이유로 출고 이후 일방적으로 삭제된 것은 현재 <한겨레> 편집국이 곪을대로 곪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뒤 <한겨레>는 도대체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조 후보자의 사모펀드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딸이 의전원에 두 번을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한겨레>는 침묵했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 인사청문회 검증팀은 문재인 정권 1기 내각 이후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취재가 아닌 감싸기에 급급했다. 장관이 지명되면 티에프를 꾸리고 검증에 나섰던 과거 정부와는 전혀 달랐다. 검증팀을 꾸리지 않는다는 수뇌부의 무책임한 결정 때문에 다른 매체의 의혹 보도에 <한겨레>는 무참하게 끌려다녔다. 후보자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잘못된 의혹 제기에 대한 추가 취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조팀의 선후배들은 의혹 제기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가 일방적으로 톤 다운 되고 제목이 바뀐다고 호소한다. 디지털부문에는 심심찮게 현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는 <한겨레> 공식 sns 계정으로 바이럴하지 말라’, ‘특정 기사는 <한겨레> 프론트 페이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내려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조국 의혹을 정리하겠다는 영상팀의 발제를 에디터가 직접 자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30, 정치를 말하다’(가제)라는 토요판의 커버스토리 기사 역시 국장의 지시라는 이유로 미뤄졌다. 조국 후보자 반대 집회에 참석해 청년들의 박탈감에 대해 발언한 청년 정치인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가 그간 보도했던 내용을 복기해보자.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불거진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사건 등 현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들은 타 언론에 견줘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취재해 보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며,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적극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면 안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타사 기자들은 손발이 묶인 <한겨레> 기자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한다. 내부에서는 <한겨레>신적폐’ ‘구태언론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종종 들었지만, 이 정도로 참담한 일은 없었다.

  박용현 편집국장 뿐만 아니라 국장단의 책임도 함께 묻는다. 국장단은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방기했다. 주니어 기자들 사이에서는 인사청문회 티에프가 있었다는 얘기를 마치 도시전설처럼 듣고 있다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과연 이런 보도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에디터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타사 보도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관련 출입처에 있는 기자에게 너무 안 썼으니까 한번 모아서 쓰자는 것이 에디터가 할 말인가? 조 후보자의 행위 중 과연 위법이라 할 수 있는 행위가 있느냐는 데스크의 질문은 절차적 불법은 없었다는 조 후보자의 변과 비슷하다.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주목해온 <한겨레>, 사회적 공정성과 정의를 외쳐온 <한겨레>, “위법하지 않으니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변을 하고 있다.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국장단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현장에서 조국 보도에 대한 항의가 제기될 때마다 밀실과 같은 유리방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도 묻고 싶다. ‘50대 진보 기득권 남성을 대변하기 위한 신문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대해 국장단은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 있는가. 50대 남성에 의한, 50대 남성을 위한 신문을 만들어오며 일각의 절독요구에 흔들릴 정도로 독자층을 취약하게 만든 건 국장과 국장단 자신들이다.

  국장과 국장단의 무책임한 결정은 무능력도 함께 남겼다. 제대로 된 검증을 못해본 탓에 검증의 기본 작업인 등기부등본 한 번 떼어본 적 없는 주니어 기자가 허다하다. 10년 뒤, 20년 뒤에 권위적인 정부가 들어선다면 지금의 주니어 기자들이 <한겨레>의 존재감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당신들은 조국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해사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후배 기자들이 취재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선배 기자들의 정무적 판단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후배들에게 왜 이런 연판장을 돌리지 않느냐고 물었던 선배들은 지금까지뭘 하고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더 이상 우리 땐 이런 취재도 했지라는 말은 하지 말라. 이는 회사 내 세대 착취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대체 어떤 절독이 두려운가. 안일한 보도를 비판하는 독자도 적잖다. “정론직필 해야 할 <한겨레>가 어쩌다 관제언론이 되었느냐는 전화를 받는 일도 있었다. 특정 집단의 독자 의견만 선택적으로대표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030 취재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 <한겨레>에 나갈 수나 있겠어요? <한겨레>는 정권 비판 제대로 못하지 않나요?”라고 의구심을 표한다.

  30년 전 <한겨레>의 창간사를 다시 읽는다.

한겨레신문은 결코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독립된 입장 즉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장차의 정치·경제·문화·사회문제들을 보도하고 논평할 것이다.”

  그토록 강조하는 한겨레의 논조가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정권에 따라,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검증 기준과 수위가 변하는 것이 바로 한겨레의 논조인가. 일부 ‘586 진보 기득권 남성의 목소리만이 <한겨레>가 말하는 국민인가.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 지도층의 위선을 어떤 언론보다 앞서서, 날카롭게 비판해온 것이 <한겨레>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논조 아니었나. 정치, 경제 권력에서 독립된 언론이라는 것이 창간 이후 그토록 자랑스럽게 목소리를 내온 송건호 정신아닌가.

  한 때, 우리에게 한겨레저널리즘과 동의어였다. 우리는 오늘 한겨레의 존재 이유를, ‘저널리즘의 가치를 함께 잃었다. 검찰개혁에 대한 보도도, 공정한 인사 검증도 <한겨레>가 할 일이다. 어설픈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조국 지키기에 나서지 말라.

  절망적인 마음으로 이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한겨레>를 바꿔보기 위해서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언론으로서 역할을 다 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기자의 이름으로 언론자유를 억누르겠다면 떠나라. 앞선 선배들처럼 청와대로, 여당으로 가라. <한겨레>와 언론자유,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는 우리가 지키겠다.

 

이에 우리는 요구한다.

1. ‘조국 후보자 관련 보도<한겨레>의 보도 참사다. 박용현 국장과 국장단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직에서 사퇴하라.

2.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검증팀을 꾸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편집국 구성원들 앞에서 상세히 밝혀라.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사유를 구체적으로 밝힌 뒤 후속 질문을 받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하라.

3. <한겨레> 기사가 언론 본연의 역할과 괴리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부 에디터들로만 구성된 독단적인 편집회의다. 편집회의 내용을 전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사 배치와 구성에 대한 현장 기자들의 의견을 직접적·상시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당장 마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