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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념

중국인 아이돌이 중국 편드는 게 문제냐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 결과가 나오고 난 뒤 국내 아이돌 멤버의 행실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미쓰에이의 페이, 피에스타의 차오루가 논란에 중심이 서있는 아이돌들로 모두 중국 국적이다. 이들이 판결에 반대하는 이미지를 SNS에 게시하자 누리꾼들이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중국 본토와 함께 배타적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 9단선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도에 표시된 영역에서 한 점도 잃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연예인을 광의의 공인으로 규정할 때 그들의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행위가 부를 반향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김제동이 그랬고, YB가 그랬으며, 신해철이 그랬다. 이들 외에도 이따금 몇몇 연예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이번에 SNS에 이미지를 게시한 아이돌들은 아주 당당했다. 당당한 모습을 정상이라고 봐야겠지만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을 포함해 공인은 언행에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특히 이런 시선은 아이돌에게 더 가혹하게 향한다. 그리고 대중의 판단과 다른 주장이라면 더 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이상한 점은 지난번 쯔위가 인터넷 방송에서(본 방송에서는 그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다.) 대만 국기를 흔들었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 모습이 알려지고 국내와 달리 중국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첨예한 사안인 양안관계를 건드렸다고 주장했다. 쯔위가 직접적으로 정치적 소신을 밝힌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소속사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띄우기 위해 애썼던 소속 아이돌을 허름한 프레임에 담아냈다. 마치 포로가 항복 선언이라도 하듯이.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의 편들 들었다는 점이 달라서일까. 쯔위 사태 때와는 달리 국내 누리꾼들이 해당 아이돌들을 비난하고 있다.

  소속사들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쯔위 사태 때 소속사가 보인 비겁한 모습에 대해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필리핀, 베트남 등의 관련국 팬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중국시장이 타격을 입기에 선택하기 어렵다. 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도 선택하기 쉽지 않다. 국내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중국시장에 아부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관련국 팬들의 오해를 풀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와 상관없이 시장의 크기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소속사의 모습은 이미 드러나 버렸다.

  이런 소속사들의 행태는 한국적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한계로 지적될 만하다. 소속 아티스트를 개별적인 주체로 보는 시각이 극히 약하기에 돌발 변수마다 대처가 안 되는 것이다. 마치 연인과의 다툼에 상대방 부모가 개입하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소속사가 장기간의 투자를 한 뒤 사후적으로 투자원금과 이익을 회수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랜 시간 돈 들이고 공 들여서 유명 연예인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에 소속 아티스트들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간혹 문제가 됐던 비상식적인 전속계약 기간, 살인적인 스케줄, 기타 다양한 송사 등은 이런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계약의 당사자 사이의 평등한 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어쨌든 상황은 벌어졌다. 이제 소속사들이 선택할 차례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을 소속사가 지켜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폼 구길 준비를 하며, 동시에 더디게 가는 시간을 원망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