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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념

권보드래 선생님이 말하는 '낯선 친구들'

 

    

 

 

 

 

  권보드래 선생님을 다시 만난 건 한겨레의 칼럼에서였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소개하며 시작된 글은 중동 지역의 혼란상을 바라보는 눈빛을 담고 있다. 글을 읽으며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분명히 종교적 믿음 이상의 요소가 깊이 박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오다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기사를 봤다. 그러다 소설로 쓰면 좋을 것 같은 스토리 라인 하나가 머리에 떠올랐다. 주인공이 사는 나라에 일정한 주기로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누가 쏘는지 어디에서 쏘는지 오늘은 어디에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불안은 그 사회 분위기의 밑바탕이 된다. 익숙하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의 익숙해짐, 외줄 위에서의 평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여유조자 사치인 사회다. 이미 세계 몇몇 지역에서는 이런 사회적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글에서 언급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도 그 중 하나다. 글은 '두려움 때문에 적을 늘리는 대신 한 명 더 낯선 친구를 사귀'자고 하며 마무리된다. 그렇다. 공포마케팅보다는 최소한 대화라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낫다. 권보드래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대학시절 한 수업에서였다. 이름에는 '딸이 보드랍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하셨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글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한겨레 : [삶의 창] 낯선 친구들 / 권보드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