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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정당의 배임과 횡령, “왜 그 당은 비례후보 안 내요?”

 

  누구나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기종목은 축구일 겁니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어 축구를 한 일도 있고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세계적 축구스타 드록바는 월드컵 기간 동안 자국의 내전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작은 축구공 하나를 두고 벌어지는 두 팀의 경쟁이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전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죠.

  예외적인 경우를 하나 가정해봅시다. 세계적인 축구리그에 전통적인 라이벌 두 팀이 있습니다. 편의상 A팀과 B팀이라고 하죠. 이 두 팀은 자금 여력이 굉장히 많아서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합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 두 팀과 나머지 팀들 간에 수준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협회는 팀 선수들의 몸값의 합이 일정 수준 이상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두는 규정을 도입합니다. 리그에 참여 중인 축구팀들 다수가 투표를 통해 규정을 통과시킨 것이었습니다. A팀은 피해가 예상됨에도 정상적인 리그 운영을 위해 이 규정에 동참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팀인 B팀은 절대 그 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합니다. 그래서 B팀은 꼼수를 고안합니다. 리그에 B-2팀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선수들을 분산하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필요에 따라 B팀과 B-2팀은 기형적인 방법을 동원해, 그러니까 B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감행하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팀 몸값 상한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인 셈이죠. B팀은 규정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러한 방법으로 규정을 무력화하겠다고 공언합니다.

  황당한 상황이죠. 사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상황입니다.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하면서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비례의석 확보용 꼼수 정당을 출현시켰습니다. 미래한국당입니다. 개정 선거법에 동의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합당한 절차를 거쳐 통과된 법을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자유당의 행태는 반헌법적 폭거입니다. 각도를 조금 틀어 접근하면 배임과 횡령 소지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정당법상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엄연히 다른 당입니다. 미통당은 약 30% 가량 정당득표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당입니다. 그런데 비례대표를 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힘을 얻어서 정치적 뜻을 관철하는 것이 정당의 존재 이유라는 원리에 입각할 때, 미통당의 결정은 힘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므로 배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미통당 주요 인사들을 미한당으로 옮긴 것은 정당의 자산을 다른 당에 자의로 넘기는 의미를 지닌 만큼 횡령의 소지가 있습니다. 미통당 당원들은 황교안 대표, 심재철 대표 등 당 지도부를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겁니다. 만약 미통당 지도부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준하는 처벌을 한다면 이들은 모두 선거권이 박탈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도부의 그릇된 행태로 인해 잃을 비례대표 의원들의 월급 총액만 따져도 40억 원 이상 될 텐데, 특가법상 배임, 횡령의 이득액이 5억 이상이면 3년 이상 징역입니다. 미통당 지도부는 정치적 처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어떠한 비난, 정치적 책임이 뒤따르더라도 일단 의석을 챙기겠다는 입장입니다. 방법만 있다면 더한 일도 할 태세입니다.

  다시 서두에서 언급했던 축구이야기로 돌아갑니다. B팀의 꼼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협회가 부당한 트레이드를 할 수 없도록 규정을 신설하는 겁니다. 가장 깔끔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에는 규정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정적 여력이 있는 A팀이 A-2팀을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B의 독주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명분입니다. 그렇게 되면 A팀은 팀의 정통성과 명예를 아주 많이 포기해야 합니다. 더불어 리그의 합리적 운영이라는 애초 취지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겁니다. A-2팀과 B-2팀이 리그 티오를 차지하면 기존에 리그에 잔류할 수 있는 팀들이 강등될 것이고 동시에 2부리그의 다른 팀들이 1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A팀과 B팀 이외의 팀들이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입니다. 리그 차원에서 재정적 능력이 부족한 팀들에게 스폰서십을 쉽게 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고 시민들도 직접 후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A팀이 내놓아야 할 자산들을 B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공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올해 4.15 총선을 앞두고 수구세력을 제외한 시민들앞에는 아주 복잡한 문제가 놓였습니다. 정당 혼자서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지자들만으로 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꼭 드는 보기가 없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수구세력을 제외한 시민들과 정치세력들은 단순히 후보를 공천하고 뽑는 선택을 할 뿐 아니라 반드시 선거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선거는 최선의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후보들 중에 비교적 우위를 갖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죠. 이번 선거는 최선의 투표전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명분실리를 저울질하고 그나마 합리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투표전략에 수구세력을 제외한 시민들이 힘을 싣는 선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