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교양

언론은 미투운동을 불량식품으로 만든다


성폭력 폭로가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무엇일지 계속 되뇌어 보지만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사태를 촉발시킨 것은 서지현 검사다. 검찰을 생각하면 검사동일체원칙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검찰은 보수적이며 수직적이고 자기보호 본능이 강한 조직이다. 검찰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충격은 여성들이 겪었던 성폭력 사례 공유로 이어졌다. 지금 가장 활발하게 폭로가 이어지는 분야는 문화예술 분야다. 굳이 공통점을 꼽자면 남성이며 연령대가 높고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이 강한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것 등이다. 성폭력 폭로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사들은 (지금까지는) 소극적으로 혐의를 인정할 뿐이다. 잘못된 욕망으로 그릇된 행동을 했지만 성폭행은 없었다는 인사도 있고 혐의 전체를 부정하는 인사도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사태의 간략한 흐름이다.

이 흐름 속에서 언론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폭로에 담긴 충격적 사실에만 초점을 맞출 뿐 그 이면에 담긴 함의는 집중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폭로들이 문화예술계에 집중되어 있는지 의문을 갖는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다 큰 문제는 이번 사태를 진보진영에 대한 공격의 빌미로 삼으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 문재인을 지지했던 인사라거나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방식이다. 본질과는 다른 요소를 억지로 삽입함으로써 특정한 연상작용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국 너희도 탄핵 당한 우리와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다. 분야의 특수성 때문인지, 이념의 특수성 때문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들은 국민을 기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방송인 김용민씨가 한 팟캐스트에서 했던 이야기다. “김구라 형님도 KBS에서 다 잘렸었어요. MB. 그런데 김구라 형은 절대 자기가 잘린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안 하는 거예요. 저는 알고 있었죠. 출연하는 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저한테 전화해서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 MB를 인터넷 방송에서 비난한 게 화제가 되고 그럴 때였는데 . 내가 언제 대통령을 욕했냐? 내가 욕한 새끼가 대통령이 됐지.””

또 보수 야당에서는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과거 서적에 담긴 일부 내용을 다시 들추어 공직 수행 적절성 논란을 점화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허나 과거 자당 의원들의 수많은 추태들이 나왔을 때는 왜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현재 제1야당은 입에 담기에도 어려운 ‘X누리당이라는 오명을 얻을 정도로 관련 비위가 빈번했던 정당 아니던가. 이런 점에 관심을 둔 언론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언론이 현상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현재 대다수 언론은 폭로 내용을 더 자극적으로 포장하는 데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걱정, 고민은 보도에 담기지 않는다. 이런 보도를 소비하는 일반인들도 간편한 비판 이상의 반응을 보이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사회 발전은커녕 현재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도 버겁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간편한 사과로 자신을 죄를 사하고 자신이 지은 죄,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은 다른 사안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한 빈터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것은 법을 어긴 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다. 현재 지목된 사람들이 움츠러들고 사과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런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유효한 방법 중 하나가 강력한 처벌 사례다. 그런 다음에야 구조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해당 분야에서 그러한 비위가 왜 빈번할 수 있었는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성원 다수의 용기가 필수불가결하다. 서지현 검사도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속한 조직에게 누가 되는 것 아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마저도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가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동료들에게 백배사죄하는 상식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언론은 드러난 현상의 표피만 핥으며 선정주의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본연의 역할인 공론장을 형성해야 한다. 관련 기사를 생산하며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는 기자, 데스크는 상황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보호,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