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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그알’의 무리한 시도

SBS <그것이 알고싶다> 1130파타야 살인사건, 그 후 1편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언론사가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건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며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그알의 무리한 스토리 전개를 보다 명확하게 독해하기 위해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르게 표현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개별 사건들의 조합으로 진실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구성

  21일 방영된 그알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은 파타야에서 임동준씨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형진 공소장에 살인혐의가 빠졌다. 김형진은 성남시를 지역기반으로 하는 국제마피아파의 조직원으로 해외에서 조직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불법도박사이트를 운영했다. 이밖에도 국제마피아파는 각종 위법행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갔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국제마피아파가 경찰과 검찰에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는 등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후반부은 국제마피아파가 줄은 댄 것은 경찰, 검찰 뿐 아니라 정치권도 있다. 은수미 의원에게는 조직에서 관리하는 운전사를 제공했다. 그 이전에는 출판기념회, 총선 유세 등을 도왔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재명 시장 시절 복지시설 환경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코마트레이드는 성남FC에 후원했고, 이후 코마트레이드는 기준에 맞지 않음에도 성남시 중소기업인 대상 장려상을 수상했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재명 시장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시절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재판을 수임한 사실이 있다. 또 시장으로 재직했을 때에도 주변에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 있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2. 각색

  언론에 종사했던 사람이나 시사 프로그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알의 이번 방송이 전형적인 각색이라는 점을 간파할 것이다. 각색이라는 표현을 중립적으로 해석하면 이미 알려진 사항들을 재구성해 특정한 이야기 흐름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 도입부에는 임동준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루고 있다. 유력한 용의자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살인혐의로 재판받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과거부터 국제마피아파는 경찰, 검찰에 금품 상납을 하며 관계를 맺고 각종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당시)은수미 전 의원과 연결고리를 가져간다. 국제마피아파가 월 200만원의 봉급을 받는 운전사를 은수미 전 의원에게 제공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은수미 의원에 대한 의혹제기는 511일 헤럴드경제의 ‘[단독]은수미, 조폭 지원터지기 전에 입막음 시도 정황기사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알은 이미 (당시)은수미 후보가 뉴스공장, 다스뵈이다 등을 통해 해명했던 내용은 전혀 담지 않았다. (당시)이재명 시장과 국제마피아파 관련 의혹도 새로운 줄기 없이, 과거 제기됐던 의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제작진도 이번 방송분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았거나 후과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국제마피아파가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국제마피아파 조직원들이 김병관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에게 접근했던 사실을 나열하면서 국제마피아파 두목의 목소리를 전한다. 국제마피아파 두목의 주장은 코마트레이드 대표가 성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니 자기 나름대로 이권을 바라고 여러 정치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형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일방적인 구애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주장이다. 거기에 더해 두목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조직원들에 대해 말하며 독립한 식구대하듯이 표현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알이 구상했던 그림과 벗어나는 대목이다.

  ‘그알은 도입부에 영화 <비열한 거리>, <아수라> 등을 동원하며 조폭과 정치권의 결탁을 다루는 듯한 연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한발 빼며 조폭의 일방적 활동 가능성을 크게 열어둔다. 더구나 엔딩부에서는 뜬금없이 임동준씨의 억울한 죽음을 다시 들먹인다. 정치권, 즉 이재명 도지사, 은수미 시장이 임동준씨 죽음의 배후에 있다는 점을 연상시키고자 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의 선거포스터를 들고 이재명과 통화하는 '그알' 제작진. '이재명을 잡았다'는 확신에 차있었던 것일까.)

 

3. 취재 여건

  ‘그알같은 시사프로그램은 자신들의 취재 여건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로 하여금 오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번주 그알방송분은 임동준씨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한 것처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랬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보인다. 임동준씨의 억울한 죽음과 정치권의 인과관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임동준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국제마피아파의 악행과 국제마피아파가 정치권에 노크했던 것은 서로 다른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알제작진은 이 두 가지 아이템을 하나로 묶으려 했을까.

  추론을 해보자면 그알제작진은 임동준씨의 죽음에 관해 수년 전부터 취재를 해오고 있었다. 임동준씨는 해외 온라인 불법도박사이트를 관리하도록 압박을 받았고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용의자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 은수미 성남시장 후보와 국제마피아파가 연관이 있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이번 아이템을 준비했을 수 있다. 허나 이런 영화 같은 스토리 기획이 개연성을 갖기에는 확실한 근거가 취재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런 무리한 방송물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범죄 조직 관계도를 연상케하는 장면. 은수미 시장의 사진은 두목급이다.)

 

4. 키맨

  이번 그알프로그램 기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키맨이 방송 후반부에 두 번 등장한다. ‘그알제작진은 그를 성남시의회 전직 관계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국제마피아파 조직원들이 순수하게 지지 활동만 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이권을 취득했다고 주장한다. 잠시 후 등장해서는 선거에서 조직과 자금을 가진 조폭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인물의 등장을 의도적으로 나누었다는 점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짧게 코멘트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두 번째 등장했을 때는 로비에서 만나는 장면부터 발언하는 장면까지 시퀀스로 엮어 마치 새로운 증언자가 등장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남시의회 전직 관계자인 이 인물은 그알제작진의 기획 취지를 가장 잘 설명한다.

이 이야기를 국민한테 다 이야기하면 국민이 안 믿을 거예요. 연쇄살인마가 자원봉사한다고 와서 해도 되고 선거운동원 등록을 해도 되고. (제작진 : 필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죠.”

 

(같은 인물, 같은 장소. 그러나 다른 앵글, 다른 구성.)

 

5. 마무리

  ‘그알의 이번 방송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임동준씨 죽음과 국제마피아파의 연관성을 다룬 전반부와 이재명, 은수미 등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했던 국제마피아파의 행태를 엮을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두 가지 아이템은 서로 떨어진 개별 아이템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알제작진은 이재명, 은수미 등 (여당)정치권이 임동준씨 죽음에 관련이 있는 것처럼 오도했다. 의도하지 않았다면 무능한 것이고 의도했다면 비열한 것이다.

  ‘그알제작진은 추가 취재를 해서 추후에 관련 내용을 더 방송하겠다고 다짐했다. 진실된 문제의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다음 방송은 어떤 일방의 주장을 야마로 잡아 살을 붙이는 식으로 방송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