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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메갈리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건지

 

 

  정의당의 논평에 이어 27일자 JTBC <뉴스룸> 보도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메갈리아와 관련된 온라인상의 갈등을 다룬 보도였다. 첫 번째 꼭지에서 성우 김자연 씨와 관련된 메갈리아 논쟁이 확산돼 일베 회원 고소로 이어졌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리고 이어진 꼭지에서 빅데이터를 통해 여성혐오에 관한 언급양이 늘어났음을 언급하면서 여성혐오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함께 일베와 같은 반대 여론도 함께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이 보도를 한쪽에 치우친 보도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도 방향이 메갈리아와 일베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갈리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시청자들이 순간적으로 일베와 뜻을 같이하는 부류에 놓이게 됐다. 담당 기자는 왜 메갈리아 대 일베라는 구도를 잡았을까.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구성할 수 있는 구도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추측도 가능하다. ‘여혐에 문제제기를 해온 메갈리아라는 커뮤니티가 일베로부터 공격을 당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할 수 있는 구도다. 남녀노소 누구나 비판할 수 있는 일베라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

  이 두 보도는 바로 전날 비하인드 뉴스에서 잠시 다뤄진 내용을 보충하는 성격이 있다. 문제의 정의당 논평 철회 사태에 대한 내용이었고 손석희 앵커는 젠더 문제는 첨예한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27일자 보도는 급조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표면적인 현상을 편의에 따라 취사선택했다는 인상이 짙다. 마치 여혐 아젠다를 움켜쥔 메갈리아는 언터쳐블이라는 듯이.

  여기에서 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영어단어인 미소지니(misogyny)’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 ‘mis~’와 여성을 뜻하는 ‘gyn’의 합성어다. 즉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의식, 태도, 행동 등을 총칭하는 것으로 남녀의 구별 없이 사회에 내포돼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단어 번역의 부적절성을 지적한다.(개인적으로 전체 글의 논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의 과정은 정치적이다. 그 결과 또한 정치적이다. ‘미소지니가 꼭 여성혐오로 번역되어야 했을까. 영어권에서 싫다를 뜻하는 다른 표현으로 hate, disgust 등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여성을 싫어하는 일본의 미소지니(ぎらいニッポンのミソジニ-)><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은 유감이다. 일본에서는 영어 그대로 미소지니라고 쓴다. 인터넷, 버스, 치즈처럼 우리에게 없던 물건이어서 그대로 사용해도 오해가 없는 말과는 달리, 여성혐오처럼 논쟁적인 단어가 직역된 것은 문제다.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역설적으로 혐오적 성향을 갖는다. 원래 미소지니라는 단어의 의미를 대폭 축소해 특정한 현상에 우리 의식을 구속한다. 가령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여성을 혐오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는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게 되는 식이다. 정정훈 변호사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갖는 낯섦의 원인을 분석했다. 여성 관련 이슈를 모두 담기에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혐오, 외국인노동자혐오는 당사자의 정체성에 대한 적대시의 태도가 나타난다. 혐오의 주체들은 대상이 (최소한 내 눈 앞에서라도) 사라지길 바라지만 여성 이슈의 경우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메갈리아 등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프레임에는 중간지대가 없다는 데 있다. 여성 이슈 전부를 여성혐오라는 틀에 욱여넣음으로써 나타나게 된 부작용이다. (남자든 여자든)이 단어가 낳은 혼돈의 상황에서 고민하는 동안 메갈리아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이 생겨났다. 이 구도에 따르면 메갈리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남성과 여성 모두 반동이다. 당신은 여성혐오를 혐오하는가, 아닌가의 구분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절대다수의 사안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이 있고 이런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인식한다. 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언론이 개별적 시각을 가지고 매 사안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특정한 사안에 대한 이분법은 독이 될 수 있다. 자신들이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피해자임을 강변하는 메갈리아에 (항상) 찬성하지 않는 것이 여성운동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논지를 구체화하고 갈등의 핵심에 파고들어 실상을 드러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일 것이다. 용기를 내길 바란다.

 

(jtbc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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