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잡념

온라인 세상에 들개 떼가 어슬렁거린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적 실력행사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특정 대상들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식으로 나타는 이런 현상은 니편내편을 가리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는다. 어제까지 여당의 행보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오던 사람들이 오늘은 야당과 특정 정치인, 언론인을 배척하는 것이다. 이들은 합리적인 의견개진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특정인, 즉 개인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폭탄 수준의 언어적 공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잘못했으니까 욕먹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야생에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들개들의 모습과 공유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보통 개들은 인간과의 삶에 잘 적응한다. 개의 DNA인간에게 의지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는 정보가 각인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들은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 무리지어 다니며 주변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람들을 극도로 경계하며 종종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들개들이 이런 성향을 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도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다. 서로 힘을 합침으로써 자신이 속한 무리를 돕고 위협이 될 만한 존재에게는 조금의 여지도 허락하지 않는다. 같은 처지에 있음에도 필요하다면 다른 들개 집단과의 전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 삶이 팍팍해진 익명의 개인들이 온라인에서 생존본능을 격렬하게 표출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지 않다는 생각, 내가 스스로 살 길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우리들 주변 깊숙이 퍼져나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말하면 여기에는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회사 오너도 있고, 건물주도 있는데?’라는 반론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서민부터 중산층까지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극화에 따른 하향평준화가 멈출 줄 모르고 지속되는 것이다. 개인의 직업이나 위치가 삶을 행복하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감정이 전염되는 것처럼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 공감함으로써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 혼자 그 고통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있다고 해서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출산율이 낮아지고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사회가 반갑지 않은 것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아이를 가질지 고민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집단적 공격성이 감소되기 위해선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노력할수록 경쟁이 과열되는 악순환을 제어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도 필요하다. 이것은 결국 또 다시 정치의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정치와 언론에 대한 공격성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실망, 사회 변화의 열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 공격성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이것을 단지 봉변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욕구와 열망을 읽고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ps.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도 같은 맥락이 아닐지. ‘유능한 개로 인정받던 한 쪽은 이미 기민하게 낌새를 챈 듯하다. 그런데 굳이 같은 수준으로 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한 쪽이 같이 물어뜯기 시작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스스로 느끼는 위기감이 보기보다 크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