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교양

2016 퀴어 퍼레이드를 돌아보며 #1

  지난 밤 과음한 탓에 머리가 아프다. 몸도 찌뿌둥하다. 그래도 올해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었다. 혐오와 반혐오의 메시지가 극렬하게 갈리는 현장, 퀴어 퍼레이드 현장을 말하는 것이다. 시청역 출구를 나서기 전부터 기독교 단체의 맞불집회 소리가 먼저 들린다. ‘올해는 더 많이 준비했군.’ 사우드가 더 커졌고 유인물, 피켓 수도 더 많아졌다. 그리고 참여한 신도들의 수도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들의 메시지는 크게 신앙 영역과 제도 영역으로 나뉜다. 신앙 영역의 메시지는 짐작하는 대로 죄를 짓지 말라는 내용이다. 제도 영역의 메시지는 동성애가 시민 일반에 피해를 준다는 내용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동성애뿐만 아니라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하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동성애는 에이즈 환자를 양성하고 국가가 치료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세금폭탄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하나이고, 이들이 축제를 할 수 있도록 광장을 내어준 박원순 시장에 대한 규탄이 나머지 하나다. 시장이 책임감 없이 행사를 방관함으로써 유해한 콘텐츠가 시민들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보지 못한 구호가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룬 듯했다. 이것과 별개로 이슬람OUT’이라는 구호도 보였다.(집회의 구호는 여러 개가 다발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뭐...)

 

 

 

 

 

 

  대한문 앞 횡단보도를 이용해 서울시장으로 건너가려고 인파를 뚫고 나아갔다. 그런데 횡단보도 이용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온 것이다.(작년에는 이용이 가능했다.) 할 수 없이 되돌아가 지하철의 다른 출구를 이용해야 했다. 프라자호텔 앞 횡단보도로 가니 이번엔 경찰들이 횡단보도를 두 겹으로 막고 있다. 혹시 광장 진입이 어려운 것인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신호등에 불이 바뀌며 경찰벽이 열렸다. 경찰들이 양쪽으로 지키고 있는 광장 입구로 들어섰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가 먼저 다가온다. 과도한 화장품 냄새와 향수 냄새가 뒤섞인 냄새다. 조금 전에 내린 소나기의 습기가 더 진하게 냄새들을 응집시키는 듯하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1년에 한 번 사회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존재를 억압하는 사회에 저항하는 몸짓이다. 참여한 사람이 모두 강렬하게 꾸민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 편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에 연대하는 단체들의 부스가 광장 외곽선을 따라 줄지어 위치하고 있다.

 

 

 

  몇몇 공연이 이어진 뒤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퍼레이드는 광장을 둘러싼 펜스 중 몇 개가 치워지고 참가자들이 좁은 출구를 빠져나가며 시작됐다. 행진 속도에 맞춰 사람들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통과한 출구 옆쪽으로 기독교 단체가 준비한 대형 트럭 두 대가 버티고 있었다. 설교와 찬양이 교대로 이어졌다. 큰 북을 두드리며 공연하기도 했다. 기독교와 세속신앙의 만남, ·서양 만남의 현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축제에 참여한 단체들의 퍼레이드 차량을 따라 줄지어 행진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차도와 가까운 쪽 인도에서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피켓과 소형 확성기를 통해 혐오와 원망의 메시지를 냈다. 이들은 퍼레이드 행렬로 진입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 두 진영을 철저히 갈라놓았다. 이날 투입된 경찰 수와 퍼레이드 참석자 수를 비교하고 싶을 정도로 많은 경찰력이 동원됐다. 퍼레이드가 반쯤 진행되던 중 기독교 신자 몇 명이 경찰벽을 뚫고 차도 아스팔트에 드러눕는다.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몸으로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몇 초 만에 여경들이 나타나 이들을 끌어냈다. 퍼레이드의 종착지가 된 출구에는 아직도 설교와 찬양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들이 먼저 도착한 내게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행렬의 선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행렬이 다시 광장으로 들어오고 무대에선 다시 공연이 시작됐다.

 

 

 

 

 

 

 

 

 

 

  기독교의 반대집회 인파는 영국대사관으로 들어가는 도로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분노로 경직된 표정들이 가득했다. 십알단 단장으로 유명한 윤정훈 목사는 과거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출연해 우리나라가 과거 동성애 청정국이었다는 발언을 했다. 표정에서 각자가 믿는 바대로 청정국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갈망을 읽을 수 있었다. 대형 스피커를 달고 세종로를 달리던 기독교 단체의 차량에서는 여러분(동성애자들)을 사랑한다.’는 소리가 큰 크게 울려 퍼진다. 동시에 반대집회에 참석한 신도들의 손에는 동성애를 박멸하겠다는 피켓이 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