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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안현수, 한국 사회를 위한 성공스토리

 



  안현수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10일 남자 쇼트트랙 1,500m 동메달에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만 2개째 메달을 얻고 있으며 안현수는 이것으로 금메달 4개를 포함해 총 5개의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아직 남자 쇼트트랙 500m 예선과 5,000m 계주 결승전을 앞두고 있으니 그의 메달 사냥은 아직 진행중이다. 안현수는 이번 올림픽에서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우리 사회는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올림픽 전부터 그를 응원하는 여론이 강세를 보였다. 

  2011년 한국에 올림픽 메달 3개를 안기며 소위 국위선양을 했던 안현수는 쓸쓸히 한국을 떠났다. 당시 안현수는 파벌싸움 속에서 설 자리를 잃고 조국을 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2년여가 흐른 지금 안현수는 러시아에 첫 쇼트트랙 메달을 안기며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러시아는 안현수의 은퇴 후에도 코치직을 보장하는 등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거기에 결혼을 약속한 미모의 여자친구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완전한 한 편의 인생 역전 성공스토리다. 안현수가 1위를 확정지은 후 그가 감격 속에 빙판에 키스를 하고 안현수의 부친과 여자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대로 방송을 탔다. 

  2014년 2월 12일자 경향신문의 인터넷판 보도는 우리 국민의 59%는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기를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각주:1] 안현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경우는 없다과 봐야하니 안현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감정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다.[각주:2] 오히려 호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 즉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안현수를 응원하는 현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는 갑과 을이 명확히 구분된 사회다. 더욱이 심각한 점은 을 사이에 경쟁이다. 우리는 내가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한 숨을 돌리면 다른 을이 내 자리로 치고들어올 수 있다는 부담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소위 무한경쟁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들이다. 작은 트랙을 쉴 세 없이 돌며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쇼트트랙은 우리사회의 한 단면과 많이 닮아있다. 안현수는 그 현장의 승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현수는 부조리한 현실을 넘어선 승리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현수의 이야기는 불의에 좌절한 주인공이 끝내 불의의 상징을 넘어서는 영화의 전형적인 틀과 매우 흡사한 것이다. 안현수는 한국 대표선수 자리를 잃지만 끝내 승리한 이미지를 갖는다.





  안현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홈페이지는 접속폭주로 마비되었다. 마치 그의 금메달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이에 앞서 박 대통령은 안현수가 러시아에 귀화한 것과 관련한 체육계의 부조리 문제를 지적했고 정치권과 검찰은 곧 행동으로 화답했다. 곧 권선징악을 위한 조치들이 '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정치권의 행동은 시민의 보편적 인식 수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안현수는 나라를 버리고 떠난 나쁜놈이 아닌 부조리를 이겨낸 승리자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안현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가슴 속 깊이 알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조리들 말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고 사회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돈키호테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얼마전 영화 '변호인'에 등장했던 말인 '계란으로 바위 친다'는 아직 우리들의 인식 속에 유효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안현수의 성공스토리에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 속에 다친 안현수가 다시 성공하는 모습 말이다.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121036301&code=980901 [본문으로]
  2. 같은 조사에서 한국 대표팀과 안현수가 맞붙었을 때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겠다는 응답은 60%, 안현수를 응원하겠다는 응답은 21%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