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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군트라우마와 군가산점제




  요즘 MBC의 <진짜 사나이>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tvN에서 방송 중인 <롤러코스터>의 <푸른 거탑>이 호평을 받았다.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고 이어 수혜 스타들이 등장했다. <푸른 거탑>에서는 정준하의 코디로 유명했던 최종훈이 ‘말년 병장’ 캐릭터로 관심을 받았고 <진짜 사나이>에서는 샘 헤밍턴이 보호본능 자극하는 ‘호주형’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진짜 사나이>는 방송 3사 일요일 저녁 예능전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던 MBC를 구해내는 데 일조한 효자 프로그램이다. 군대를 다녀온 스타들이 다시 군 입대를 한다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많은 시청자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군필자의 군대 이야기는 항상 자극적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남자)들은 다들 조국의 위기를 구해낸 전사가 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믿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군대는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생겨날만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고 변화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해가는 속도를 군대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괴리감은 더 커지고 있다. 그래서 군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결국 ‘군대는 군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군대에 대해 100%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 군필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군대에서 소위 ‘꿀만 빨다나온’ 사람이나 ‘뺑이 치다 나온’ 사람이나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군대가 힘든 첫 번째 이유는 어려움의 원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다는 점에 있다. 처음 입대하고 ‘훈련병’이 되고 자대에 배치되면 ‘이등병’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병장’이 되어 전역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그 안에서 군인들은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관계설정 방식을 배운다. 두 번째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가 의무라는 것이다. 좋던 싫던 정해진 기간 동안 맡은바 임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제약들이 상존하는 곳이 군대다.

  남성들이 대화를 할 때 가장 쉽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소재는 역시 ‘군대 이야기’다. 군필자가 두 명 이상만 모여도 군대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 있다. 군대에서의 생활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들이 하는 군대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텐데 그러면 그 대화에서 여성들의 입장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군대이야기’를 하는 사람(남성)이 본인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시라. 남성들의 ‘군대이야기’는 트라우마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군대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자랑스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안도감’이다. 군대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나 성취한 업적에서는 ‘자랑스러움’이, 이미 지난 어려운 기억에서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당시에는 불쾌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마저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군대이야기 중 ‘축구이야기’는 많은 기억 중에 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군대를 가기 전까지 ‘축구’는 그저 재미있어서 했던 운동이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도 축구 자체에 좋은 느낌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축구는 정치적 요소들이 가미된다는 점에서 보통 축구와 많이 다르다. 심지어 축구를 하며 팔꿈치를 휘둘러대는 장교와 축구를 했던 기억도 있다.(물론 상대방을 다치게 하려는 악의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군대 축구’라는 용어를 따로 쓸 정도로 군대 밖과 안의 축구는 많이 다르다. 여기가 군대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인터넷이 떠돌던 유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하루는 70대인 할아버지께서 악몽을 꾸시는 것 같아 손자가 깨워드렸다고 한다. 손자가 할아버지께 안 좋은 꿈을 꾸셨냐고 여쭙자 할아버지의 대답이 ‘다시 군대 가는 꿈이었어’였다는 것이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 <이털남(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에서는 군대인권문제를 다루며 군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군필자가 군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자가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 군대를 입대하는 꿈’이나 ‘전역할 날이 되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역이 미뤄지는 꿈’을 꿔본 적이 있다면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군필자들이 이러한 꿈을 꿔봤을 것으로 예상한다. 군대를 다녀온지 수십년이 지난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최근 군 가산점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매번 군대를 다녀옴으로써 얻게 될 손해나 느낄 상실감에 대해 보상해주자는 이야기가 표면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군 가산점제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여성이나 장애인들이 역으로 차별을 받게 된다는 논거로 반대를 한다. 오랫동안 계속된 논쟁 속에 대략적인 합의는 도출되었다. 어떤 식으로든지 보상은 해주자는 것이다. 병사 월급을 인상해주거나 일정 기간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실질적인 보상 이외에도 군필자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허무함, 자괴감을 덜어주려면 사회적 인식의 변화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 의무적으로 징병되는 하나의 인격체에 대한 존중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면 군인, 군필자에 대한 예우에 대한 인식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겠는가. 또한 군대 내에서도 병영 생활, 훈련 여건 등 병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 부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부대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이 가장 잘 안다. 이기적 논리로 기본을 져버리는 부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