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티아라 사태와 드라마 <다섯손가락>

 

(사진출처 : SBS 홈페이지)

  티아라의 멤버 은정은 동국대학교 연극학부 소속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연예인으로서 동국대학교 학벌을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문화자본의 획득을 의미한다. 이 문화자본은 많은 동국대학교 동문인 영화계, 가요계 스타들과의 직접적 인맥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역사와 전통을 함께 한다는 프리미엄 획득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학입학을 앞둔 연예인들이 유명한 연극영화과(등 관련학과)로 입학하려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티아라는 아이돌 춘추전국시대라 할 수 있는 현재의 한국가요계에서 많은 히트곡을 냈고 많은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랑도 어느 한 순간에 수그러들 수 있음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티아라 멤버 화영에 대한 왕따설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흐름은 티진요로 대표되는 티아라 안티 세력과 화영 동정여론을 만들어 냈고 현재 티아라 멤버들이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보이콧으로까지 발전했다. SBS 주말드라마 <다섯손가락>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던 은정은 얼마 전 압박에 못 이겨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또한 KBS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 측은 티아라의 은정과 지연이 카메오로 출연한 촬영분을 편집하기로 했고 같은 방송국의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측은 이관순역을 맡은 소연의 분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현상들을 이해하려면 SBS <다섯손가락>팀이 은정을 왜 캐스팅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식선에서 생각했을 때, 어떤 배우를 작품에 캐스팅한다는 것은 그 배우가 작품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아이돌보다 전업 배우들이 더 무게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언론에서 아이돌의 연기를 평가할 때 기대보다’, ‘생각보다라는 표현과 뉘앙스가 담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에게 중요배역을 맡겼다는 것은 다분히 시청률을 의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에는 30~50대 주부들이 시청률을 뒤흔드는 드라마 시장에 아이돌을 투입시켜 시장의 규모를 확대하고 동시에 시청률 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은정에 경우에도 캐스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은정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문화자본일 것이다. <다섯손가락>이라는 작품이 가진 약점 중에 하나는 젊은 층을 공략할 만한 요소의 부재이다. 다시 말해 <다섯손가락>은 시청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30~50대 주부들을 위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제작진에서 드라마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은정의 투입이었다. (연예기획사의 입장에서 소속 아이돌을 여러 분야에 진출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여기에서는 방송사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것이 논점에 부합할 것이다.)

  은정의 <다섯손가락> 하차는 현재 은정의 상징적 문화자본이 상당부분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다섯손가락> 제작진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캐스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소, 즉 은정이 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징적 문화자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한 스타의 이미지 손상과 그에 따른 쇠퇴보다 아이돌의 이미지가 갖는 한계를 보았다. 거의 정점을 찍은 아이돌 주류의 가요계에서 더 이상 아이돌 간의 변별점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이돌이 우상으로서 팬들에게 가치 있었던 것에는 가수 본연의 아이덴티티보다 외부로부터 구축된 이미지에 의한 영향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키워진존재이다. 팬들 앞에서라면 자신에게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옷을 항상 입고 있어야 하는 우상과 같다. 팬들은 그 아름다운 옷을 입은 우상을 계속 보기를 원한다. 아이돌이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 보수한다면 그만큼 수명은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티아라의 사태와 같이 팬들이 이미지에서 흠을 발견한다면 그 아이돌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무관심이 아닌 증오로 변화하여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팬들은 아이돌로부터 속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아이돌들과 기획사들이 취하는 이미지 구축 전략은 그들을 하루하루를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은정의 하차 이후 <다섯손가락>의 시청률이 소폭 상승했다고 한다. 하차만을 원인으로 삼을 수 없겠지만 은정을 하차시키지 않았을 경우의 전방위적 드라마 거부 현상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아이돌들이 공히 가지고 있는 약점이자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사례는 몇 차례 나타날 것이다. 아이돌을 키우는 연예기획사들의 고민이 점점 커져갈 것이다. 아직 진행 중인 동방신기와 SM엔터테인먼트 간의 갈등에서 가장 큰 쟁점 사안은 전속계약기간이다. 동방신기의 경우 SM과의 전속계약기간이 13년이었다. 법원이 동방신기의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전속계약 13년이 아이돌로서는 종신계약에 해당한다는 이유가 작용했다. 여기에는 아이돌의 수명이 짧다는 사회적 통념이 담겨있다. 이것은 너도알고 나도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요정’, ‘전사였던 아이돌들 중 일부만이 살아남아 토크쇼에서나 옛 추억을 팔 뿐이다.

  우리나라 아이돌의 시작을 1996HOT의 등장으로 볼 때 아이돌의 역사는 이제 만 16년 이 돼간다. 우리나라에서 16년을 꾸준히 활동한 아이돌은 없다. 만약 동방신기가 찢어지지 않았다면 13년의 전속계약기간을 다 채울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아이돌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기이다. 시한부 운명의 아이돌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는 아이돌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현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대한 재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아이돌, 연예기획사, 팬들의 인식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