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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유시민 작가를 위한 변호

 

  415일 저녁, KBS 개표방송에 출연한 그의 낯빛은 평소와 달랐다. 그는 그 말을 안 했다면 200석도 될 뻔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아쉽게 낙선한 후보들의 면면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에 더해 그의 말과 행동에는 부담과 두려움이 서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과거 기득권이 그를 다시 정치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공포.

  유 작가는 시사평론가의 태도를 유지했다. 180석 발언을 했을 때에도 그가 나름대로 계산한 수치에 스스로의 희망을 조금 얹었을 뿐이었다. 유 작가는 정치인도, 정당인도 아니었고 그저 평론했을 따름이다. 유 작가의 발언이 나온 직후 화들짝 놀란 것이 바로 민주당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의 위치는 명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에서는 오만하다느니 우리도 180석 이야기했다가 망했다느니, 여론을 자극하느라 자학적 언사도 아끼지 않았다. 한데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2016년 총선에서 마치 당론처럼 총선 압승론을 내세웠다. 당대표인 김무성 의원까지도 180, 200석 이야기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시사평론가의 발언과 책임 있는 정당 유력인사의 발언을 같은 층위에서 대비시키는 것은 판단능력이 없거나 특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당시 새누리당이 패배했던 이유에 총선 압승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압승을 예상했던 새누리당은 당내 기득권 다툼에 몰두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총선에 개입한 잘못으로 인해 현재 대법원에서 형을 확정 받았다. ‘친박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편가르기에 앞장섰다. 청와대 위세에 밀리던 김무성 대표는 공천장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며 부산 영도로 대표직인을 들고튀었다. (이후 옥새는 서울에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했으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이번 총선은 당연하게 이길 것이라는 생각으로 국민들을 무시했던 오만이 총선 패배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에 투표 성향이 달라진 것에 유 작가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진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무시하고 보수 기득권 언론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니 유권자에게 영향을 주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떠한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유시민 작가 발언이 투표에 영향을 미쳤냐고 묻더라도 그 또한 정확하지 않다. 그 답을 하는 당사자도 그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은 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한편으로 사전투표에서 진보층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본투표에서 상대적으로 통합당 지지자들 증가세가 보였던 것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이 새누리당 탄핵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당시 새누리당은 회초리를 피했다. 오히려 새는 좌우 양날개로 날아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의 후신)에 기회를 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취했다. 몇몇 인사가 탈당했을 뿐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한 세력을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심판하기 위해 시민들은 3년을 기다린 것이다. 전체 투표자 중 40% 가량의 시민들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오래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개개인마다 투표의 절실함이 있었던 것이고, 그 절실함의 한 가운데에는 아직 심판받지 않은 정치세력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는 차분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심판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유권자들이 투표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투표를 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보수 유튜브 등에서 본투표일에 투표할 것을 유도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전투표 때에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니 애국세력은 본투표일에 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 때문에 본투표 때 통합당 지지층의 상대적 쏠림현상이 나타난 유인으로 작용했음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통합당과 소위 보수 언론들은 유 작가를 통해 집권여당의 오만이 드러났다고 비난했지만 유 작가 발언이 실제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하다. 다만 결과를 통해 교훈을 얻을 필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민심이 확인됐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6.2%로 유권자 3명 중 2명이 참여했다. 어느 진영 지지자가 투표를 포기해서 졌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미래통합당 앞에 성적표가 놓였다. 성적표에 담긴 시민들의 의사는 통합당의 정치행위는 총체적으로 틀렸다는 것이다. 통합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큰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총선에 참패하고 몸을 숙일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와 달리 통합당은 ‘103석이나 국민들이 주셨으니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통합당은 인식을 바꿔야 한다. 통합당은 여도 야도 아닌 그냥 미래통합당이다.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그나마 해법이 도출될 것이다. 그 해법을 받아들여 결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