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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진중권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

 

  혼란스럽다. 어떻게 글을 정리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몇 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 본 진중권의 모습은 고통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이 안 됐다. 조금이라도 힘을 줘 움켜쥐면 깨질 것 같은 얇디얇은 유리컵 같았다. 그는 그의 마음 속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표출했고 지표면에 두 발을 딛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였다. 과거 토론에 임했던 그는 논리정연하게 상대방 주장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토론에서 그의 토론방식은 참담했다. ‘나는 맞고 너희는 틀렸어. 그냥 그래.’라는 태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보통의 토론 패널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유시민 이사장을 가해자로 위치시키는 구도를 짜고 토론에 임했다. ‘친 정부 성향의 조직된 지지자들로부터 나는 공격을 받았고 그들을 선동한 것은 유시민 당신이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내가 왜 학교를 그만둬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진중권의 이런 태도 때문에 예상과 달리 토론은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대결양상으로 엇나갔다. 그래서 전통적 매스미디어에 대한 논의는 대폭 축소됐다.

  토론 초반 그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조금 섞여 있었다. 목소리 톤, 힘없이 차오른 숨, 정돈되지 않은 내용 등 그의 모습을 보며 어렴풋하게 기시감이 느껴졌다. ‘어디에서 이런 대화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와 김웅 기자의 녹취록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린 뒤 그 허탈함과 분노를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방식이다. 그러는 본인 스스로도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더 큰 무게를 두었겠지만 그보다 현재의 좌절감이 훨씬 크기에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한다. 자신이 굳건하게 세운 성벽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진중권은 소위 조국 사태에 참전하지 않은 것을 질타하는 세력이 친 정부 지지자들이고, 그들은 조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유시민 이사장과 김어준이라고 생각하는 알고리즘을 드러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하면 당신들이 조국 옹호하느라 내가 공격받고 피해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도 사실과 거리가 있는 인식이다. 대중을 향한 유 이사장의 태도는 진중권 옹호였다. 유 이사장은 진중권의 서울대 강연, 방송 중 발언 등 최소한 두 번 이상 그의 입장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관계는 문화자본을 상실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알고리즘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진중권은 나의 스크린에서 사라졌었다. 사실 방송은 채널A외부자들에 출연할 뿐이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양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학교 일 때문에 방송을 줄인 것이라고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JTBC 신년토론회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 혹은 사건이 그를 무너지게 만들었을까. ‘불안이 영혼을 잠식해버린 그의 모습을 보니 정신이 아득하다. 그를 조롱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엔 그의 모습이 곧 깨질 유리컵처럼 너무나 위태로워 보이기에. 그 깨진 유리컵 파편으로 베일 상처가 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