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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래...

[뭐래]촛불주역들이 ‘팽’당했다?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기득권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자풀이를 해보면 이미 ’, 얻을 ’, 권세 입니다. 이미 갖고 있는 권리, 권력 따위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에는 누가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득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재벌, 대기업, 판사, 검사, 정치인, 고위공무원 등을 떠올립니다. 이렇듯 기득권이라는 단어는 권력과 권한의 불균형이라는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반영합니다. 여러 함의가 담긴 사회적 단어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기득권에 아주 예민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언론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향신문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겁니다.

  경향신문은 1906년 프랑스인 신부 플로리안 드망쥬가 창간한 주간 신문 경향신문의 제호를 계승한 신문입니다. 1946년 미군정이 위조지폐 사건으로 정판사 건물과 시설을 압수하는데요, 이를 천주교 경성교구에 불하했고 교구 재단이 경향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창간 당시에는 반공주의적 성향도 있었다고 전해질 만큼 좌우 한쪽에 경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 게재된 연혁에는 창간 초기 우익쪽에서는 빨갱이 신문이라고 윽박질렀고 좌익쪽에선 미군정 앞잡이 신문이라고 매도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거치며 여러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유독 회사의 소유가 자주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1962년 천주교 재단은 이준구에게 경향신문을 매각합니다. 1965년 박정희 정권은 사장 이씨를 구속하고, 정권과 친분이 있는 기아 산업에 경향신문을 강제 매각시키는 조치를 취합니다. 1969년에는 중앙정보부가 압력을 행사해 신진자동차가 경향신문의 주식을 차지하도록 합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뜻에 따라 문화방송과 통합되고 5.16장학회(정수장학회)가 경영권을 갖게 됩니다. 1981년 문화방송과 분리된 후 사단법인으로 전환되며 레이디경향’, ‘소년경향같은 잡지를 발행합니다. 1990년에 한국화약그룹(한화그룹)이 경향신문을 인수했고요.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한화그룹으로부터 분리돼 지금의 사원주주회사 체제를 형성합니다. 경향신문 입장에서는 해방 이후 현대사 속에서 부침이 참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로는 국가권력의, 때로는 자본가들의 영향력에 휘둘렸어야 했던 것이죠. 경향신문의 흥망성쇠가 기득권의 입김 속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30일 경향신문의 기사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당했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사는 현재 권력인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을 크게 표현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을 죽 보면 꼭 이런 표현을 제목에 사용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석운 대표는 촛불혁명 이후 개혁 작업이 더디다는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목에서 프레이밍 작업을 한 탓에 독자들은 본문 내용을 한쪽 방향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게 됐습니다. 문제의 팽당했다는 표현은 긴 본문 중 한 문단에 나온 표현입니다. 해당 문단에서 박 대표가 언급한 민중, 도시빈민의 규정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맥락을 살펴보면, 보수세력 일각에서 제기하는 진보진영 내 촛불청구권에 대한 반박이 주된 내용입니다. 정부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특별히 우대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그 과정에서 팽당했다는 표현이 등장했죠. 얼마 전 문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대근 논설고문의 칼럼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이 고문의 주장을 요약하면 야당과 소통없이 청와대가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은 실패했고, 청와대가 모든 권한을 독점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필시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기존 경향신문 논조의 연장선에 있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이 반드시 의미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식의 비판 혹은 비난이 현실을 더 좋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말입니다. 박 대표의 문제의식을 전한 기사에서는 나는 몇 번째 순위의 민중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또 이 고문의 칼럼에는 추레한 정치권, 국회의 실상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문제제기는 야당, 특히 보수야당에서 집권 초기부터 해오던 공격입니다. 민중과 청와대를 유리시키려는 의도였죠.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백낙청 선생이 지난 27일 한 언론사에 보낸 기고문을 접하게 됐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현실인식 방향을 제시하는 기고문이었습니다. 특히 한 문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럴 때 하늘을 본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스스로 촛불정부를 표방한다고 해서 일체의 비판과 투쟁을 자제할 일은 아니다. 다만 비판하고 투쟁하면서도 촛불혁명의 주체라는 자기인식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촛불 이전의 타성으로 정부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면 곧바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규탄하며 다음에 더 나은 정권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면 촛불정신을 누가 지켜줄 것이며 입맛에 맞는 정권이 다음에 들어설 확률은 얼마나 될까.”


  촛불혁명의 주체로서 시민이 현 정부에 애정을 갖지 않으면 상황이 좋아질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일 겁니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다음은 자유한국당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의미도 담긴 것 같습니다. ‘비판적 지지라는 표현도 결국은 지지에 방점이 찍힙니다. 지지라 함은 힘을 보탠다는 뜻인데 비판이 실제 도움으로 이어져야 뜻을 이룬 것이라 할 것입니다. 아주 전략적이고 치밀해야 합니다.

  백낙청 선생이 기고문을 보낸 곳은 경향신문입니다. 비단 시민들만을 향한 메시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도 백낙청 선생의 의견을 반드시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 [원희복의 인물탐구]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박석운 촛불주역들은 모두 당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300936011&code=940100

경향신문 - [이대근 칼럼]문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252110005&code=990100

경향신문 - [백낙청 송년 특별 기고]촛불혁명과 한반도, 하늘을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270600075&code=91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