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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뺄셈정치

[탈뺄셈정치(13)] 다중이, 그리고 언론의 티키타카


 

(먼저 분명히 밝혀두지만 모든 사람의 청원은 보장돼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여부다. 그리고 합리성은 해석과 이해의 영역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1년 하고 조금 지난 시점에 개각이 이뤄졌다. 장관 5, 차관급 10여 명이 새로이 지명 또는 임명됐다. 청와대가 장관 지명 사실을 공식 발표한 지 이튿날인 오늘 후보자들에 대한 여러 반응들이 조명되고 있다.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인데 그 중에서도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에 지명된 유은혜 의원에게 비토가 집중됐다. 요는 유 의원이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이다. 개각 내용이 공개된 당일 청원게시판에는 유은혜 의원의 교육부장관 후보 지명 철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온라인 청원에 동참한 인원은 하루 사이에 2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유은혜 교육부장관 지명자 철회 안하면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겠다.

  해당 청원은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이자 문재인 대통령 열렬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세상이 열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대통령 취임사를 인용했다. 자신이 현 정부에 긍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뒤이어 대통령은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기간제교사,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정규직화하는 정책이다. 정규직 교사들은 피땀 흘려 결과를 얻은 사람들이지만, 비정규직 교사들은 누구의 백으로 들어와 편한 일하는 사람들로 규정한다. 비정규직 교사들은 자신들이 선택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약자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일선 교사들에게 부담이 되는 방과후 돌봄확대 정책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한다. 이 부분까지 읽어보면 교육계 현실에 관심이 많은, 특히 정규직 교사의 권익에 관심이 많은 교육계 종사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유 의원이 교육부장관에 지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현 정부가 교육기관을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 정규직화 정책 실현을 위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용되는 공간으로 생각한다고 지적하면서 그토록 존경해왔던 대통령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밝혔다. 이 대목을 보면 교육계 종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 부정적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어 유 의원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며 비정규직 교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법안을 발의했기에 장관에 지명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자신이 교사라며 신분을 밝힌다. 교사의 양심상 비정규직 교원이 정규직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스스로 교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 사람은 본인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노동자에 대한 차별 의식이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는 글을 마무리하며 현역불패라는 꼼수를 부리는 정부가 아니길 바란다며, 지지를 거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사람의 청원글을 보고 진의가 궁금해졌다. 정말 일선 학교 교사라면,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불행일 것이다. 하나의 글 속에서 지지를 철회했다가 다시 지지 철회를 철회하는 논리 일관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 차별의식을 보고 있자면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 사람의 영향을 받을 학생들에 대한 우려가 크다. 혹시 교사가 아니라면, 거짓이라면 이 또한 불행이다. 거짓 청원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이를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현재 다수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조차 유은혜 교육부장관 지명을 반대한다는 맥락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지지자들조차 반대한다면 이 얼마나 문제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유효한 주장인 것 같다. 하지만 청원글을 보면 그가 진정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스스로 지지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지 여부보다 지지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청원인 본인은 문재인 지지자라고 주장하겠지만 그 내용은 절대 문재인 지지자라 보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유은혜 의원을 교육부장관에 지명해서 지지를 철회한다니. 그것도 유 의원이 비정규직 교원 처우 개선 법안을 대표발의 했기 때문에 안 된다니. 문 대통령의 그간 행보와 분명히 벗어나 있는 주장이다.

  청원인의 진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상이다. 유 후보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소식에 이어 유 후보를 타깃으로 한 기사들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 어떤 기사는 대놓고 강행 대 민심수렴이라는 구도를 내세우고 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후보자에게 모두 부담을 가중시키는 의도가 담뿍 담긴 공격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비판한 건지 유은혜 의원을 비판한 건지 가늠하기 어려운 청원 등장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부디 청원게시판을 활용한 여론조작, 그리고 언론의 티키타카가 아니길 바란다. 물론 생각이 있는 언론사라면, 독해능력이 있는 기자라면 청원글을 단순히 기사로 옮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유은혜 의원의 교육부장관 후보 지명 철회해 주세요.” 청원 주소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59758)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