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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뺄셈정치

[탈뺄셈정치(14)] 길들여진 낙타



  2014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낙타 그림이 뭔지 알아?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은 밤에 낙타를 이렇게 나무에 묶어두지. 그런데 아침에 끊을 풀어. 보다시피. 그래도 낙타는 도망가지 않아. 나무에 끈이 묶인 밤을 기억하거든. 우리가 지난 상처를 기억하듯.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얘기지.” 최근 몇 개월 동안 보수진영, 보수(경제)지는 정부의 경제 성적이 참혹하다며 경제 위기가 온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레토릭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진영, 보수지의 공격이 합당한가. 그렇지 않다. 근래 경제 실정에 대한 그들의 지적은 매우 지엽적이며, 공격을 위한 공격일 뿐이다. 그보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을 논할 시점이 아니다. 집권한지 13개월 만에, 정부 첫 예산집행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성적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정부는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적잖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1년 만에 바뀌는 국가 경제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1당 독재 국가인 북한에서도 이런 급변은 쉽지 않다. 작은 변화도 쉽지 않으니 천리마만리마니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왜 이런 불합리한 주장에 영향을 받을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두 가지 상반된 기억이 만들어 낸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80~90년대에는 국가가 대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수출시장에 뛰어들어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당시에는 기업이 투자하는 만큼 고용이 느는 선순환이 지속됐다. 대기업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고 동시에 국민의 성취라는 단순한 논리구조가 형성됐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성공하면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인식을 사회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런 논리구조가 강화된 결정적 계기는 역설적으로 기업들이 위기에 처하면서다. 바로 IMF 구제금융 사태다. 당시 뉴스만 틀면 나왔던 것이 채무 상환 불이행으로 기업이 부도를 맞았다는 것이었다. 기업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기업들은 회생을 위한 방안으로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고공행진하던 경제는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사회구성원들은 무중력 공간에서 허우적댔다. 꿈 같은 성취와 고통스런 악몽이 그 짧은 시간동안 연달아 우리 사회를 훑고 지나갔다.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표어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구제금융 사태 이후 대기업을 우대하는 경제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다시 일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길 바랄 뿐 경제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 문제에 목소리가 가장 큰 것은 기업인 집단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보수진영의 머리 큰 정치인들은 낙수효과를 주창했다. 대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면 과거와 같은 투자와 고용, 소비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해묵은 논리였다. 이런 믿음이 현재 한국 경제시스템을 만들었다. 높은 수출 의존도 때문에 작은 외생변수 하나에도 국가 경제 전체를 걱정해야 한다. 대기업의 주도권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대기업 논리를 감히 거부할 수 없다. 노동자는 창의적 주체가 아닌 조직의 수동적 수행자로 기능할 뿐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경제인 집단이 마음만 먹으면 경제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언론환경이 형성됐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이분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JTBC <썰전>에 출연 중인 박준형 교수가 주로 쓰는 논법이 이분법이다. 극단적인 주장을 강조함으로써 상대방의 주장을 흐린다. 예를 들어 대기업 집단이 모두 악마라고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아요.’ 같은 주장이 대표적이다. 또는 부동산 투자를 모두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아요.’ 같은 자매품도 있다. 누구도 대기업 집단을 모두 악마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부동산 투자가 모두 악이라고 하지 않았다. 대기업 집단에게 선진국 수준의 룰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투자든 투기든 부작용이 크니 적당히 해먹으라고 요구할 뿐이다. 자유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문제를 지적한다고 공산주의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보수진영 인사들과 보수언론은 기업의 책임을 요구하면 반기업, 내수 진작을 말하면 반수출이라고 비난한다.

  198610, 한 일간지에 취업 시장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으로 기사가 실렸다. 기업은 수요가 많은데 취업 지원자가 없어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30여 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환경이 변했을 때 경제 주체들의 대응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외주화다. 경영효율화가 이유였다. 이후 하청기업의 하청기업이 꼬리를 물고 피라미드를 이뤘다. 이런 피라미드 구조는 대기업 이윤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기가 좋을 때의 과실은 상층부에 집중된다. 반대로 안 좋을 때는 비용절감 부담은 하층부에 쏠린다. 또한 이런 구조에서는 대기업이 직접 인력을 유치할 유인도 떨어진다. 최소한의 인력으로 이윤을 높이자는 것이 외주화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구제금융 직후 정부는 견디기 급급했고 이후 정부는 무력했거나 의도적으로 방조했다.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아젠다를 제시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가계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데 사회구성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소수 대기업이 성공하면 국민이 함께 득을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낙타는 나무에 묶여 있지 않다. 허상을 극복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