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탈뺄셈정치

[탈뺄셈정치(15)] 100%를 기대하지 말라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청와대로 향하는 차벽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청와대로 향하는 길이 촛불시민들에게 열렸다. 당시 함께 등장했던 것이 경찰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이는 운동이었다. 시민의 민주적 의사표시를 막았던 경찰버스에 꽃스티커를 붙여 평화로운 꽃벽을 만들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스티커를 많이 붙여놓으면 경찰들도 스티커를 일일이 떼어야 하는 그 수고로움 때문에 차벽 설치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기대 아닌 기대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는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스티커 부착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경찰버스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경찰차벽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티커를 떼던 사람들은 이렇게 붙여봤자 경찰 수뇌부에서 결정하면 차벽은 다시 설 것이고 결국 스티커 떼는 고생은 계급이 낮은 말단 경찰들이 도맡게 된다고 주장했다.

  몇 번째 촛불집회였을까, 당일 행진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한 중년 남성이 학생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남성A의 주장은 이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도 다 생각이 있어서 붙인 것일 텐데 일부러 붙인 스티커를 떼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던 학생은 전경들만 고생할 텐데, 내가 떼고 싶어서 떼는데 무슨 문제냐고 반박했다. 남성A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윽고 근처를 지나던 또 다른 중년 남성B와 여성A가 합류했다. 여성A뗄 수도 있는 거지 뭐 이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성A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됐다. 새로 합류한 남성B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남성B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너무 부끄러워서 그래요.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둡시다. 정말 미안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남성A는 자신이 옳다는 뜻은 굽히지 않았지만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티커를 붙이고 떼는 일에도 이렇게 의견이 갈릴 진대, 이 보다 더 큰 일에 의견이 나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조지 레이코프는 두 가지 프레이밍 모형을 제시했다. ‘엄격한 아버지모형과 자상한 부모모형이다. 그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하며,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제대로 교육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설정한 의제도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북한과 남한에 있는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일으켜 세웠을 때처럼)기업하기 좋은 경제를 만들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며, 이런 불순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런 엄격한 아버지프레임에 대응하는 데 똑같이 엄격한 아버지프레임을 동원하는 것은 승산이 없다고 말한다. 작은 영역에서 적을 만들고 편을 갈라 싸우는 프레임보다 더 큰 가치와 도덕 그리고 포용을 말하는 자상한 부모프레임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이건희 손자에게도 공짜 점심을 줘야 하느냐는 프레임에 대해 비용 효율성 프레임에 갇히기보다 이건희 손자에게도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같은 혜택을 주고 그에 합당한 국민적 의무를 다하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 구성원임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가치를 주장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수업 안 들어도 학점을 받는 것이, 오너 일가라는 이유로 직원 무릎을 꿇리거나 물컵을 집어던지는 것이, 608000만원 상속으로 세계적 기업을 넘겨받는 것이 모두 불합리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여론 주도층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언론은 그러하다.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사실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보도 태도는 엄격한 아버지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기자나 언론사 모두 나름의 해석이나 가치판단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정형화된 스트레이트 기사를 내는 것이 보다 명료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방법이며 현실적이라는 고착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 쟤들은 조울증이 있나?’라는 의구심이 양산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보수세력이 이미 짜놓은 엄격한 아버지프레임 속에서 대항하던 과거의 체화된 논법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문제다. 때때로 진보진영에서 나타나는 엄격한 아버지프레임은 비교적 같은 진영 구성원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준다.

  두 가지 멘트를 비교해보자. “지금도 여전히 미진하다고 느끼는 점들이 있잖아요. 이게 훗날에 정부가 추가 대책을 내놨을 때 지난번 대책 때 이것까지 할 걸이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거예요.(중략) 이렇게 찔끔 찔끔 하는 방식으로, 즉 시장에서 문제가 생긴 이후에 사후약방문하는 식으로, 핀셋 규제하는 식으로 대책을 내놓으면 안 되고 조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책을 내놔야 되고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보유세 일반을 강화하는 기초 위에서 대책이 나왔어야 하는데 사실은 보유세 일반 강화 대책이 아니에요.” 지난 913 부동산대책이 나온 직후 나온 반응이었다. 다음은 전자와 다른 방송에서 나온 인터넷 은행의 은산분리 완화 검토에 대한 멘트다. “금융혁신을 위해서 해보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겠다는 정말 넓고 강한 시민사회의 확신 아래 진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은산분리 완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굉장히 높은데 이런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요. 은산분리 완화 뒤에 숨어서 재벌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자유당의 의도를 미리부터 강하게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뭐가 위험하고 왜 안되고 하는 목소리들이 매우 시끌벅적하게 나오는 게 바람직한 겁니다. 상당히 예민하고 상당히 위험한 규제 완화이기는 해요. 하지만 저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요. 유일한 전제는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두 멘트는 아주 다르게 들린다. 접근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100에 도달하지 못한 아쉬움을 말하고 있고 후자는 어느 방안이 더 나은 방안인지 충분히 여러 주장을 비교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전자는 913 대책에 대해 관성적으로 접근한다. 해당 방송 전체를 관통하는 기류는 몇몇 의미 있는 대목도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기에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려면 구성원의 지지가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책이 공개되고 종부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점, 부동산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향후 더 강력한 정책이 집행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반면 후자는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완화가 검토된 배경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한다. 그러면서 여러 우려들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완화 정책의 불가피성을 설득한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콘텐트, 다른 패널의 발언이지만 콘텐트의 진행자는 동일인물이라는 점이다. 진행자는 진보진영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진영 내부로부터 대체로 인정을 받는 인사다. 하지만 이슈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가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이런 방송인도 이런 오류를 나타낼 수 있다면 다른 시사보도 콘텐트의 오류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는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을 것이다. 진보진영의 여론주도층이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여기다. 현실적으로 100%는 가능하지 않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가능할 따름이다. 과도한 겸양이나 필요 이상의 자아비판은 오히려 현실을 오도하고 사회구성원들의 판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