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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뺄셈정치

뺄셈의 정치를 거부한다+(1)



  패배의 기운이 온라인을 파고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패배감은 승리한 진영에 속해있음을 자처하는 몇몇 사람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권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에 도취됐던 대통령이 국민들에 의해 탄핵을 당하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섰고 이후 1년만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그 대통령에게 최대치에 가까운 신뢰를 보냈다. 그런데 패배의 언어 속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뺄셈의 정치. 이들은 무분별한 불안감을 표출하면서 미래에 있어야 할 적, 그것도 진영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호명하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는 한가운데에 대한민국이 있다. 모두가 비웃었던 대통령의 운전자론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핵미사일을 담은 언론의 공포보도가 사그라지고 변화한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상상하기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뺄셈의 정치가 기승을 부렸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고위 인사 방남 등을 두고 보수진영에서는 정부가 평양올림픽을 기획했다며 비꼬았다. 어떤 야권의 정치인은 천안함 폭침의 주범 김영철이 내려오면 총살해야 한다며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자신있게 이런 행태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대는 절대명제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적화통일을 숭앙하는 붉은 세력이 남한에도 존재한다는 명제. 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은 무조건 이적행위로 몰아붙이고 억압했다. 이들은 절대명제를 사회에 이식하는 과정 중에 김일성 개새끼를 외치지 않으면 우리편이 아니라는 이분법을 강화했다. 그리고 남한이 처한 지리적 처지처럼 사회적 사고틀은 작은 섬처럼 가두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보수진영의 뺄셈의 정치는 국민들에게 탄핵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인위적 체제통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실적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진영은 전쟁을 반대한다면서도 핵 군비 경쟁 등 남북 군사대결의 긴장 고조는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 긴장 고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답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북한을 배격하고 남한 사회를 억압하는 보수의 언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뺄셈의 정치가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진보진영에도 분명히 뺄셈의 정치가 작동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보수진영은 구심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만 진보진영은 그 반대인 원심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안정을 위해 억압의 희생양을 찾고 진보주의는 자신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요소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뺄셈의 정치에 대해 문화대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 국면에서 이재명 지사에게 가해졌던 압력은 상당했다. 이 지사는 지난 탄핵국면 당시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당시 여당에 대한 피의 숙청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사 제거를 바라며 크게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지사와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격적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사용하는 언어도 닮았다.

  몇 편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후의 글들은, 전우용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찢묻은증거라고 할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