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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인터넷 뉴스가 담아내는 현실주의, ‘SNS 여론’

  1984년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What do Ombudsman Do’에서는 퓰리처가 창간한 뉴욕 월드지의 옴부즈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시 난파선 기사에는 항상 고양이가 등장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고양이의 등장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뉴욕 월드지의 초대 옴부즈맨 이삭 화이트(Isaac D. White)는 담당기자에게 정황을 확인하게 된다.

“난파된 배들 가운데 한 척에 고양이가 있었다. 선원들이 그 고양이를 구하러 돌아갔다. 다른 기자들은 이 내용을 놓쳤는데, 나는 잘 보이게 기사에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다른 신문 에디터들이 경쟁사에 졌다고 자사 기자들을 질책했다. 다음에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타사 기자들이 고양이가 없었는데도 문책이 무서워 고양이 얘기를 만들어 넣었다. 나는 고양이 얘기 없이 기사를 썼다. 그랬다가 심각한 질책을 당했다. 그 뒤로 배 사고가 나기만 하면 우리는 항상 고양이를 집어넣는다.”[각주:1]

  이런 일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위 인터넷 가십기자들의 한 부분을 차지한 SNS 여론 보도다.





위와 같은 기사의 마무리를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다. 연예 가십기사는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분류되는 인터넷 기사에서도 이런 마무리가 종종 등장한다. 왜 이런 마무리가 기사 작성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여기에서도 역시 빠질 수 없는 것이 인터넷 상에서의 경쟁이다. 당연히 이것은 기사의 선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페이지 뷰가 많을수록 광고 단가가 높아지는 구조에서 선정적인 기사 제목과 내용이 대중을 자극하고 페이지뷰를 높인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인터넷 여론을 기사에 담는 관행이 생겨났다. 기사 말미에 SNS 여론이 위치함으로써 기사는 보편적 상식선에 위치하고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러한 기사 작성을 통해 단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에, 그리고 우리 언론 환경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선 SNS 여론이라는 것은 여론을 가장한 기자의 주관적 취합, 선택이다. 이미 각종 전문기관을 통해 실행된 여론조사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표본집단의 선택, 조사의 방법, 조사내용 설계 등 외부적 요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담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매 선거철마다 등장한다. SNS 여론 이야기를 하며 전문기관의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이야기 한 것은 기사 작성을 담당하는 이들이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추려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단지 기사에 쓰일만한 내용들을 작성자의 주관대로 선정해서 담아내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여론이 반드시 사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14일 인터넷을 달군 사진이 있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정몽준 후보가 서울의 한 노숙인 급식시설에서 배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보는 이들에게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는데 접시에 담긴 밥의 양과 그것에 놀란 것처럼 보이는 노숙인의 표정 때문이었다. 사진이 공개되고 정몽준 후보를 향한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다. 정몽준 후보가 노숙인을 비하했던 것이거나 몰이해가 있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사진기자는 당시 노숙인이 밥을 더 달라고 해서 더 퍼준 것이고 노숙인은 입을 벌리고 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사실을 밝혔다. 당시 사진기자가 사실을 밝혔지만 그 전까지 인터넷에서 정몽준 후보는 몰상식한 인물로 회자되었다.(버스카드가 떠오르겠지만, 정몽준 후보에 대한 평가를 하는 글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인터넷 기사를 통한 여론 형성의 주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면 인터넷의 특성상 빠른 시간 안에 그 내용이 전파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가십기사라 할지라도 항상 기사의 당사자가 존재하는 만큼 그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인터넷 가십기사의 작성을 담당하는 작성자는 언론사의 인턴사원이나 기사 작성을 의뢰받은 계약직, 아르바이트 직원들이다. 이들은 언론사와의 관계에서 절대적 을의 위치에 놓여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수익성을 위해 기사를 작성한다. 지시가 있다는 것이다. 기사별 페이지에 기사보다 더 큰 면적을 광고가 차지하는 곳이 많은 것을 보면 그런 지시를 할 만한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사실상 이들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SNS 글을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한 노력의 의지도 없는 것이다. 이런 기사를 작성하는 구조의 또 다른 이면에는 언론사 입사 문제가 있다. 인턴으로 활동하며 쌓은 각종 실적을 나중에 채용시 참고하기 때문이다. 채용 문제는 이들이 기사 작성에 있어 회사의 눈치를 보고 고정적인 틀을 깨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관련기사 : ‘검색어 장사’에 눈먼 언론사…인턴, 온라인 기사 쓰기 내몰아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33040)

  언론사의 현직 기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회사에서 벌이고 있는 이런 작태와 이런 작업을 해왔던 담당자들 중 일부가 자신의 후배로 들어오는 상황 말이다. 이것을 회사의 경영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이것이 언론사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1. 이재경 옮김(빌 코바치 ‧ 톰 로젠스틸 공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한국언론진흥재단, 2009, p.7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