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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이준석의 토론에서 변희재의 모습이 보인다

 

 

 

  젊은 나이에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 참여했고 정치적 중요 시점마다 새누리당에서 긴요하게 사용했던 이준석.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후광, 젊은 보수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은 그이지만 이제는 그 약발도 다 떨어져가는 듯하다. 사실 그는 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새누리당의 노회한 정치인들의 문법을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습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배우듯이. 이 과정에서 분위기 파악이 빠르다는 그의 장점이 아주 잘 드러났다. 그는 꾸준히 새누리당의 키드로서 성장해왔다.

  어제 jtbc <밤샘토론>에서는 새누리당 키드가 성인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표창원 씨가 답답해할 만했다. 토론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이준석의 토론 방식 때문이다. ‘a이면 b이다.’라는 명제가 나왔다고 하면 보통 a는 보편적인 전제로 토론 참석자가 대부분 인정하는 내용이다. 가령 해가 지면 습도가 올라간다.’와 같은 이야기에서 해가 지는 것은 하나의 상황 설정이다. 그런데 이 설정을 꼬투리 잡으면 토론이 산으로 간다. 토론에서는 북한에서는 최고 존엄의 모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성공단을 닫았다.’는 표창원의 명제에 대해 이 준석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최고 존엄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지도자에 대한 모독과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잘못의 경중을 따졌을 테지만 이준석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더불어 종북 낙인찍기를 할 수 있다고 위협을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

  또한 일단 지르고 보는 식의 발언도 눈에 띄었다. 과거 진중권 교수와 변희재의 토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했다. 변희재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서해 특정 지역에 북이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내용을 무기로 몰아붙였다. 진중권 교수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토론이 끝난 뒤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경우 악의적인 의도로 잘못된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더라도 토론을 망친 것에 대한 책임은 그대로 남게 된다. 이준석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박근혜 정권이 그 동안 북한 제재를 중국에 꾸준히 요구해왔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미국 눈치 보여도 중국 열병식에 참석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말은 박근혜 정권의 외교가 군사 분야에만 국한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발언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닌가. 또한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경우는 북한의 돌발적 행동이 나왔을 때이고 지금이야말로 제재 동참을 요구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시점은 최근 몇 주 사이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미사일을 고각으로 쏠 수 있다는 말은 현재 맥락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다. 남한을 타깃으로 북한이 미사일을 고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달성했다. 오히려 지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의 핵탄두가 북미에 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서 미사일을 굳이 고각으로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군사 전문가의 발언도 다수 나온 바 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개성공단의 중요성이 큰 이유가 북한에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개성공단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개성공단은 극한대치의 대척점에 위치하면서 남북이 작은 무엇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개성공단에 대한 일방적인 사업 중단 선언의 메시지는 단순한 대북 제재 메시지와는 다르게 다가갈 것이다. 결국 개성공단은 북한을 겁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동 사업을 통한 협력을 확대, 남북의 심리적, 물리적 접촉면을 확대하는 발판의 의미가 컸던 것이다.

  이준석이 이번 토론에서 열을 내며 무리를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토론은 31로 치러야한다는 부담감? 현 정세가 정권과 여당에 불리하다는 불안감? 이런 것들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겠지만 본래의 모습이 더 확실히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러지 않다가 갑자기 돌출적으로 그런 태도를 보인 게 아니라 원래 그랬다는 것이다. 젊고 합리적이고 새로운 보수가 아니라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읽고 그것을 거침없이 좇았던 사람이다. 이것에 비하면 상대방의 말을 끊는 등의 토론의 매너 문제는 중요치 않게 보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