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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차벽이 먼저인가, 폭력시위가 먼저인가.’가 문제는 아니다

 

 

 

 

  모월 모일 새벽 평소와 다름없이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응급환자가 실려 온다. 교통사고 환자로 머리에서 다량의 피가 흐르고 있다. 놀라움도, 두려움도, 당황스러움도 얼굴에서 찾을 수 없는 당직의는 절차에 따라 환자를 맞는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환자를 따라온 보호자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아쉽군요. 가망이 없습니다. 조치해드리겠습니다.”

놀란 보호자는 다급하게 의사에게 묻는다.

  “가망이 없다니요. 검사도 해보기 전에 그걸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의사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대답한다.

  “응급실 경력 15년인데 딱 보면 알아요.”

그러자 이번엔 힘겹게 정신을 차린 환자가 묻는다.

  “최소한 CT라도 찍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대충 눈으로 본다고 뭘 안다는 말이오!”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한다.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현재 국정을 운영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러하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를 하는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이 시민보다 한수 위, 아니 몇 수 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은 언제든지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우리가 올바른길로 이끌어주겠다는 오만이다. 정부가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 학생, 노동단체를 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찰이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불허한 것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있다. 경찰이 세 차례 집회를 불허한 가장 주된 논리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참가하는 시위는 폭력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규모가 큰 시위에는 항상 버스 행렬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시청 앞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하면 세종로 사거리에 버스들이 죽 늘어서는 식이다. 언제든지 차벽을 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헌재는 불요불급한 상황에서는 차벽 설치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결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집회현장에서 차벽은 거의 상수로 봐야 한다.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상황관리의 용이성이다. 시위대가 차벽에 대응하든 안 하든 그 지점에서 상황을 종결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여기에서 상황종결이라 함은 시위의 종료를 말한다. 만약 시위대가 차벽 앞에 진을 치고 대치한다고 하면 얼마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경찰은 집회신고 시간 초과, 교통 소통 등 이유로 강제 해산에 나선다. 세월호 참사 때 대부분의 집회가 이런 식이었다. 한편 1차 민중총궐기 때처럼 분위기가 격앙되면 바로 물대포가 투입된다. 어쨌든 일정한 시간 동안 마찰이 있고난 후에 집회가 해산된다는 점에서 결과는 같다. 경찰 입장에서는 원하는 곳에서 집회를 해산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차벽과 물대포의 콤비네이션이다. 더구나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면 이것을 폭력시위의 프레임에 가두고 전체 집회를 폭력집회로 규정한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집회에는 정말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런 만큼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양태도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마찰만을 부각해서 여론전에 열을 올린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정 역사교과서와 노동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보다 집회의 폭력 대 평화구도가 주목 받은 것도 이런 여론전에 많은 언론들이 호응한 탓이다.

  물론 폭력 행위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비민주적 정부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논의의 지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참여할 여지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폭력은 옳지 않다. 나라와 시민들을 위한 집회라면 시민들의 지지가 가장 앞자리에 위치해야 한다. 특정 단체가 선두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 행렬에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거기에 산이 있어서라는 말처럼 앞에 차벽이 있어서차벽을 부수려는 분들이 있다. 이런 실력행사가 비민주적, 반헌법적 정부에 저항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민주적 차벽을 뚫는 방법이 물리적 실력행사뿐인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분명한 것은 경찰들의 조건반사적 대응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보도된 바대로 경찰은 차벽과 물대포 사용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다분히 행정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경찰이 시위대를 마구 팬다든지 합법적인 총기 사용이 허용된다든지 이런 식의 말이 여당의 국회의원 입에서 나오고 종편에서는 위수령 발동과 같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은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으로 보기보다는 정부의 의중을 읽고 내뱉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와대가 직접 메시지를 내기보다 주변에서 먼저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청와대의 의중을 대신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누가 시켜서 했든, 잘 보이려 했든 청와대의 의중을 꿰뚫은 것이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자신도 시위대를 IS에 비유했으니 심증이 확증으로 넘어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만약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정부는 시위대의 돌발행동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등장만으로도 시민들을 위협하는 차벽과 물대포는 최후의 수단에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집회를 효율적으로 종료시키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오늘 집회는 여기에서 끝!’이라는 메시지를 내뿜으며 집회의 정당성 여부는 수면 아래로 끄집어 내리는 것이 차벽과 물대포의 사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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