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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뺄셈정치

[탈뺄셈정치(20)] 선거제도 개혁 가능성을 가늠할 바로미터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이유는 정치권의 뺄셈정치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원정수 확대는 의원들의 기득권을 분산시키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법부에서 상고법원은 필요하다고 하면서 대법관 수를 늘려달라고 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권력은 나눌수록 파괴력이 줄어든다. 비례성 강화와 의원정수 확대로 인한 이득은 부작용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단식 중에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발언의 요지는 민주당과 자한당이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해서 들고 오라는 것이었다. 이 대표의 이런 요구에 많은 범여권 지지자들이 반발했다. ‘염치없이,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이 대표의 요구를 들으면서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민주당과 자한당이 합의해오면 어떤 안이라도 무조건 받겠다는 것인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지만 그 외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분명히 입장차이가 있을 것이 아닌가. 더구나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에서 가장 많이 손해를 볼 당은 당연히 민주당과 자한당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현재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소선거구제에서 가장 정치적 수완을 잘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자한당이다. 여기에 더해 자한당 입장에서는 그 수완이 얼마나 잘 먹혀들어가느냐에 따라 여야가 바뀌는 상황도 충분히 기대해볼 수 있다. 이런 두 당이 합의해서 가져올 안은 정의당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왜 민주당과 자한당의 합의를 요구했을까. 혹시 민주당과 자한당 내부에도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를 받을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양당에서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를 바랄 유인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현행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는 민주당에게 유리한 선거제도가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해 잘해야 본전인 정당과 못해도 본전인 정당의 싸움은 언제나 후자가 유리하다. 한편 자한당, 특히 친박계 입장에서는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를 받아들일 유인이 분명히 있다. 굳이 계파싸움에서 승리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친박정당의 존재를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 만약 현재 선거제도 하에서 민주당이 대승할 경우 친박계는 정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친박계 비례대표가 대거 입성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의 매듭을 먼저 푼 것은 청와대다. 국회가 합의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집권 이후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지역구 200, 비례대표 100석으로 구성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지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의사를 확인한 5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에 돌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곧 권력구조 개편 문제가 따라붙었다. 19TBS<뉴스공장>에서 진행자인 김어준 공장장과 이 대표가 의견을 크게 달리한 것도 이 대목이다. 이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먼저 하고 이후에 제로베이스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논의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공장장은 국민적 거부감이 큰 내각제 우려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실 두 사람 논쟁의 논리구조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마치 어떤 사실을 금기어로 설정한 것 같다. 선거제도 개혁 문제의 핵심은 민주당 대 자한당의 구도만은 아니라는 사실. 선거제도가 국회의원들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당별로 득실을 따져보기도 하겠지만 당 내부적으로도 이해관계가 갈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기존 지역구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국회의원, 당협위원장들이 정리될 것이다. 국회의원 정원 확대 여부를 떠나 지역구 의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역구 당협위원장 자리는 통폐합될 것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벌어질 일이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뿐만 아니라 선거제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비례대표 순번(지역 할당 포함)을 어떻게 할당할지 정하는 것도 큰 갈등의 요소다. 이런 내부 교통정리가 이뤄진 다음에야 정당 간 협상이 가능하다. 공장장이 언급했던 국민 다수의 동의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 결과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나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언급하면서 부정적 여론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해서 이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라고 주장하며 논의 테이블의 권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원내 5당 대표들은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마련해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양당 정치인들이 의견을 내지 않고 있지만 만약 실질적으로 선거법 개정 작업이 진행된다면 분명히 당내 불만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 선거제도 개혁 가능성이 커질수록 갈등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뜻이다.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길 바란다. 그래야 선거제도가 개혁되든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국민들이 우리 정치권의 민낯을 확인하는 계기라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