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

뷰티풀민트라이프 취소에서 드러난 예술적 취향



  고양 아람누리극장에서 열리기로 되어있던 ‘뷰티풀민트라이프(뷰민라)’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언론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또 갑질이네’였다. 우리나라 계약서를 보면 항상 ‘갑’과 ‘을’이 등장한다. 이 구분의 근거는 양 주체간 힘의 차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어디어에서의 갑’, ‘무엇무엇의 갑’이라는 표현을 보게 되는데 갑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소수 예외자를 제외하고는 돈을 지불하는 쪽이 갑이 된다. 계약주체간 협상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이러한 구분은 우리나라 계약 문화의 독특한 현상이다. 대체로 해외 공연계약에서는 주체별 역할을 명시하고 있어 계약서만으로 실제 힘의 차이를 알 수 없다. 이번 케이스에서는 고양문화재단이 갑이었고 페스티벌을 기획, 실행하기로 했던 ‘마스터플랜프로덕션’이 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재단과 마스터플랜프로덕션 사이에 오간 공문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트페이퍼의 사과문과 함께 붙어있던 4건의 공문을 지난 5월 3일 극장 앞을 지나던 중 확인할 수 있었다. 재단이 먼저 뷰민라 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세월호 사고로 사회적 슬픔에 잠겨있는 상황에서 뷰민라를 진행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마스터플랜프로덕션은 협의 없이 취소에 관한 보도자료가 나간 것과 페스티벌 하루 전에 취소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고 취소에 대한 책임 소지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재단에서는 약정서에 명시된 대로 배상을 하겠다는 간략한 답신을 보냈다. 결국 마스터플랜프로덕션은 정상적인 협조 없이 페스티벌 진행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취소 통보를 수락하는 답신을 보냈다.

  그동안 고양시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사업을 꽤 잘 진행해 왔다. 특히 ‘고양호수예술축제’ 같은 경우는 시민들의 참여와 반응도 꽤 좋았다. 고양문화재단이 이런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것에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간 재단이 문화예술에 열중했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8일 텐아시아는 지방선거를 앞둔 양당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뷰민라가 취소된 것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각주:1] 고양시장 새누리당 예비후보였던 백성운 의원은 뷰민라를 계속 진행하려는 고양시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재단(이사장은 현 시장이 맡음)이 페스티벌 하루 전날 취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러한 정치권의 압박, 여론 눈치보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 중론이다. 만약 정치권 입김설이 사실이라면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정치권의 예술적 취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의 논리대로라면 방한해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를 애도했던 제프 벡, 코니탤벗은 물론 해당 공연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 비난받아야하지 않을까.

  이러한 비난에는 예술가와 공연 콘텐츠를 하찮은 장식품으로 보는 사고방식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봐야한다. 언제나 필요에 따라 넣었다 뺐다할 수 있는 요소로서 대중예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 특히 대중예술인들이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그들의 여러 역할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봉사는 시민들의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연예술은 실연자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올해 뷰민라의 무대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슬픔에 젖어있는 사회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 정치권과 고양문화재단은 시민들로부터 그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소통의 기회를 막은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판단하도록 기다려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들의 예술적 취향에 관용은 없는 것인가.







  1.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47285 [본문으로]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선은 존재할까?  (0) 2013.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