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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인한 상처와 그 회복 <연을 쫓는 아이>


(스포일러)


1.

  아미르는 바바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법적으로도 사회적 인식도 그렇다. 하지만 바바는 항상 아들 아미르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고 다가가기 힘든 거리를 두었다. 처음 아미르는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자신의 탄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낳다가 생을 마감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아미르는 아버지와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하인으로 함께 살았던 알리와 하산 부자에게 주어졌던 애정이 아미르 자신에게 주어졌던 애정보다 크다고 느낄 정도였다. 특히 또래였던 하산에게 주어졌던 바바의 사랑은 아미르를 더욱 힘들게 했다. 사실 아미르는 선한 아이다. 다만 바바에게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은 연날리기의 계절이 되어감을 의미했다. 아미르는 연날리기를 곧 잘했다. 연날리기에서는 두 가지 영애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연 싸움에서 다른 아이들의 연줄을 모두 끊어 우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으로 끊어진 연을 쫓아 잡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끊어진 연은 일종의 우승트로피 같은 것이었다. 아미르가 우승하고 하산은 마지막으로 끊어진 연을 쫓았다. 하산은 날아가는 연이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산은 이번에도 분명히 아미르에게 연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했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사람들의 축하를 뒤로하고 하산의 뒤를 따라갔다. 마을 한 후미진 골목에서 아미르는 고통스러운 선택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을 아이들을 괴롭히던 아세프 무리와 맞이한 하산. 하이산은 그들에게 성적인 모욕을 당할 상황에서 아미르는 두려움 속에 눈을 감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산은 연을 손에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온다. 돌아오는 하산을 맞이하며 연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던 아미르. 하산은 말없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결국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의 인정을 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하산을 희생시켰다. 하지만 그러한 인정과 명예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미르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하산과의 관계 역시 예전 같을 수 없었다. 하산을 볼 때마다 가슴에 자리한 죄책감은 점점 선명해졌다. 어린 아미르는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하산의 침대 매트리스 밑에 생일 선물로 받은 시계와 돈을 숨기고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갔다. 하산에게 누명을 씌워 집에서 내쫓으려는 것이었다. 하산은 그때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산이 사실대로 이야기 한다면 아미르의 잘못이 드러날 것이었다.

  “하산, 네가 그 돈을 훔쳤니? 아미르의 시계를 훔쳤니?”

  “예.”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다. 하산은 아미르가 연을 쫓아가던 골목에서 자신을 보았다는 것을 그리고 침대 밑에 시계가 있었던 이유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소설 속 인물들은 거짓으로 연결되어있다. 

 

  바바와 아미르는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배신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바바가 하인의 아들이었던 하산에게 베풀었던 호의는 부자간의 끌림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하산은 바바와 하인이었던 사나우바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바바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하인 알리의 아들로 숨겨 키우기로 결정했다. 바바의 선택으로 인해 바바는 물론 알리, 하산, 아미르 모두 거짓의 함정 속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알리가 하산과 함께 집을 떠나겠다고 하던 날 밤에는 비가 내렸다. 바바는 알리에게 떠나지 말라며 애원했다. 아미르에게는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던 바바, 그런 바바의 얼굴에 눈물이 흐른다.

 

2.

  2001년, 피난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미국에 온지 20여년이 지났다. 거짓으로 엮인 관계인 바바, 알리, 하산, 모두가 세상을 떠나고 아미르는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바와 아미르의 거짓과 진실을 알고 있던 한사람, 라임 칸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미르에게 오랜 시간 지독하게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하산의 아들 소랍이 살아있음을 알린다. 2001년 카불은 탈레반에 의해 극도로 황폐한 지역이 되었다. 이복동생의 아들 소랍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랍의 행방을 추적하던 끝에 아미르는 아세프에게로까지 이른다. 어린 시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세프와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다. 아미르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죄책감의 고리를 끊기로 결심한다. 아세프의 일방적인 폭력이 가해질수록 아미르의 몸은 무너져내려갔다. 그와함께 아미르의 몸이 무너져 내릴수록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미르의 가슴 속에 자리했던 죄책감 역시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아미르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우여곡절 끝에 소랍을 미국으로 데려오지만 어린나이에 감당해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 켰던 까닭에 소랍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상처와 그 회복은 언제 완성될 수 있을까.

 

3.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거짓에 의한 상처와 그 상처의 치유를 이야기한다. 바바와 아미르 부자는 알리와 하산 부자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바바의 죄책감은 가슴 어딘가에 암처럼 응어리져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것은 아미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미르는 인생을 살아가며 언제든 자신의 죄를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었지만 목까지 차오르던 말을 끝내 할 수 없었다. 자신과 아버지 바바가 저지른 일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이제 남은 것은 이복동생의 아들 소랍뿐이다. 거짓말 때문에 바보같이 엉켜버린 인생을 위해, 그로인해 생긴 상처의 회복을 위해 아미르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카불로 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