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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세대를 위한 소설 <구해줘>




기욤 뮈소 스타일

  기욤 뮈소는 1974년에 프랑스 앙티브에서 출생한 작가이다. 2004 <완전한 죽음>을 시작으로 내놓는 그가 작품마다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기욤 뮈소는 당시 현학적이고 작가중심적이던 프랑스 문학계에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호응을 얻었다. 로맨스의 토대 위에 소설적 판타지와 서스펜스를 적절히 혼합하였고 빠른 이야기 전개와 상황, 장면 묘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이야기 흐름을 탈 수 있도록 한다. <구해줘>를 비롯해 기욤 뮈소의 많은 작품들이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그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도 공감 가능한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겠다.

  위키피디아에서 기욤 뮈소를 검색해보니 키워드라는 항목이 나온다. 키워드란 그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말한다. 기욤 뮈소의 작품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사랑’, ‘판타지’, ‘상류층 주인공’, ‘크리스마스’, ‘반전이다. ‘사랑이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소재이다.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라는 주장이다. 로맨스 소설에 판타지를 가미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구해줘>에서는 샘의 연인 줄리에트를 데려가기 위해 온 죽음의 사자 그레이스가 등장하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주인공 엘리엇은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주인공들은 현재 의사로 상류층에 속하지만 모두 불운한 과거를 이겨낸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인간의 생물학적 육체를 고쳐낼 수 있는 의사지만 자신의 운명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크리스마스라는 날은 작품 속 상징적인 날로 등장한다. 크리스마스는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한 날인데 작품에서 온전한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욤 뮈소의 소설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반전이었다. 자칫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지만 반전을 통해 소설의 후반부까지 독자들을 집중하게 한다.

 

판타지-서스펜스-로맨스가 적절히 혼합된 이야기

  한 남녀가 우연한 사고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의 사랑은 시작되었다거짓말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짧고 강렬한 만남을 뒤로하고 줄리에트가 프랑스로 떠나려한다.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줄리에트의 비행기는 화재로 추락하게 되고 모든 탑승자는 사망한다. 하지만 샘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었던 줄리에트는 이륙직전에 비행기에서 내려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사랑의 이끌림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른 것이다.

  샘은 연인을 잃은 것에 자책한다. 용기를 냈더라면. 그런 샘에게 그레이스가 찾아온다. 그녀는 줄리에트가 아직 살아있고 그녀를 하늘로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줄리에트를 데려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여기에 죽은 샘의 아내 페데리카와의 과거, 그레이스 옛 연인 루텔리와 그녀의 딸 조디, 샘의 고향 친구이자 신부인 셰이크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상 세대에 다가가는 소설

  <구해줘>를 보며 영화를 글로 옮긴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상황, 장면 묘사와 빠른 전개도 한 몫을 했지만 그 것과 함께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은 보편적 소재를 차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운명을 이겨내는 이야기나 죽음의 사자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귀욤 뮈소의 또 다른 소설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는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주인공 엘리엇이 등장한다. 이러한 것들은 20세기와 21세기 서양, 특히 미국의 문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이 소설을 본 독자들은 사랑과 영혼이나 ‘If only’등 미국 영화들을 한번쯤 떠올렸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글보다는 영상이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가장 큰 대중적 파급력을 가진 매체는 신문이 아니라 TV이다. 일반인들이 직접 만든 영상 콘텐츠를 손쉽게 ‘youtube’에 업로드하고 공유한다. 또한 현재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트위터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140라는 한정된 분량에 메시지를 눈에 띄게 작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상의 속성과 많이 닮아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귀욤 뮈소의 소설은 영상의 시대와 잘 어울린다. 비록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독자들의 해석 능력에 의해 메시지 수용에 변화가 생기지만, 소설을 읽음으로써 독자 머릿속 자신만의 스크린에 소설<구해줘>를 영사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