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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님아 그 법안을 받지 마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어떤 시간제한이 있었던 것인 냥 헐레벌떡 처리됐다. 법안이 처리되기 전부터 말이 많았는데 처리된 지 하루 만에 위헌 제청, 법안 수정 이야기가 나온다. 불고지죄의 성격과 민간으로의 대상 확대, 대상 설정의 형평성 위배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수사기관의 자의적 수사로 언론 기능 전반에 위축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의 언론인들과 시민단체는 김영란법을 속히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완구 총리가 후보자였을 당시 기자들과 점심식사 자리에서의 대화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 이런 요구가 더 커졌다. 당시 이 총리는 김영란법의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돼서 통과되면 언론인들이 곤란해질 거라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 문제로 검찰 들락거려 보라는 반 협박성 발언에 대한 반감도 나타났다. 그리고 언론인들은 문제가 조금 있더라도 이런 법을 우리 사회에서 시행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언론인들이 선택한 것이 옳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김영란법에 대한 진보진영 언론인들을 보면서 학창시절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건데 그 분 친구의 아버지 이야기라고 한다.

 

   술에 취해 귀가 하던 노인이 강도를 만났다. 노인의 수중에 현금이 별로 없는 것은 확인한 강도는 카드 현금 서비스를 받으라며 윽박을 질렀고 결국 현금 인출기 앞까지 동행했다. 강도가 무심코 한도가 별로 안 되시죠?”라고 묻자 그 노인은 나 골드야!’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한도대로 돈을 모두 인출해 강도에게 건넸다고 한다.

 

   진보진영은 그들의 자존심, 도덕적 우월성을 선택했다. 그동안 언론의 출입처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등 권언 유착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던 것의 연장선으로 불편한 쪽은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언론인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두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돈과 권력에 가까웠던 언론인들의 행태가 줄어들까. 적잖이 회의적이다. 고급 식당, 룸싸롱 등 접대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는 이미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고 있다. 현금 사용이나 카드 끊어 결재하기 등이 손쉬운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정관계 입문 등 값을 매길 수 없거나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즉 돈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어떻게든 해법을 찾을 것이라는 말이다. 늘 그래왔듯이.

   다음은 정치적 수사는 감내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진보진영의 주장을 자세히 보면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부작용이 조금 있더라도 언론계가 더 깨끗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바라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법률적으로 강제해서 언론계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부정적 현상이 줄어드는 등 법을 의식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원치 않게 청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거나 청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김영란법의 존재가 피난처로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깨끗해지기를 원하는 바람에는 더러운 부분이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는데 더럽다고 인식되는 대상들은 나름의 살길을 위해 더 음성적인 영역을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개개인의 양심과 상식이 사전적으로 통제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반면 비판 언론인에 대한 정치적 외압의 가능성은 더 넓어진다. 우리는 이미 MB정권 때 어처구니없는 언론 탄압을 목도했다.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인들은 여러 방면으로 얻어맞고 쫓겨났다. 김영란법 위반으로 언론인이 조사를 받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타격이다. 무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해당 언론인이 잃은 신뢰는 되찾을 방법도 보상받을 방법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비교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언론인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우선 침묵하는 방법.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언론의 핵심 기능인 의제 설정을 회피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양시양비론을 펼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양쪽의 주장을 인용하는 방식이다. 이것도 입장을 밝히지 않는 또 다른 방법이므로 이번 사안에서는 적절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찬성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진보진영 언론인들은 대체로 김영란법에 찬성하는 기류다. 경험을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해보자는 의견이 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언론인이 김영란법 통과의 장애가 되는 것, 즉 언론이 김영란법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오히려 강하게 찬성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김영란법에 대한 시민 여론이 뜨거운 상황에서 나서서 반대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신뢰를 보내는 시민들에게 충성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의 원안대로 언론인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 표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는 충분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에 등장하고 있는 찬성 주장들을 보면 김영란법이 언론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오히려 취재관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기존 제도권 언론의 폐단에 대한 적극적인 반감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영란법 처리 국면에서 진보진영의 언론인이 져야할 부담은 김영란법의 부작용 가능성이 아니라 그들과 도매금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지 않을까. 장애물이 되지 않겠다는 고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민 대중의 선택이 옳다는 믿음으로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