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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미술과 저작권법 - 이성과 이상의 간극 좁히기

  지금도 이성은 이상을 좇고 있다. 법(法)을 이성으로, 예술을 이상으로 단순화해서 본다면 이성은 이상과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한다. 상식적 관념으로 법과 예술의 관계를 볼 때, 예술은 끊임없이 다른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반면 법은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필요가 발생했을 때 전진하기 시작한다. 저작권법 제1조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법은 이미 창조된 예술을 보호하고 앞으로 나올 예술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여기에서 법을 이성으로 예술을 이상으로 둔 것을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법과 예술에 접근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성은 사회전체가 공유할만한 것, 그리고 이상은 예술가 개인의 것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논지전개상의 편의를 위해 차이를 염두에 둔 설정한다. 사실 개념들은 혼재한다.

  우리 법에서 저작권 보호를 받기 위한 예술작품(저작물)의 조건은 아이디어가 아닌 예술가의 창의적 표현과 예술가의 사상과 감정의 포함이다. 여기에서부터 예술과 법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가령 뒤샹의 ‘샘’의 경우 기성 소변기에 의미를 부여해 탄생한 것인데 소변기는 뒤샹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소변기를 예술작품이라고 하면 실제 소변기를 만든 회사 역시도 공동저작자가 돼야할까? 20세기 초반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성을 통하지 않은 예술작품의 탄생을 시도했다. 그들은 술을 마신 만취 상태 혹은 마약을 하고 창작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예술가의 사상과 감정이 온전히 담긴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여러 이견의 여지를 낳는다.

  창작물과 창작여건의 보호는 예술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미래를 보기도 한다. 어떤 새로운 것의 등장에 대해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과 같은 수사를 자주 접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예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 개인의 사상이 외부 사회와 만날 때 변화가 발생한다. 변화가 발생하고 그것에 뒤따르는 문제의 해결을 돕기 위해 만든 것 중 하나가 법이다. 법은 그 시기와 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재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경우 변화의 양상은 더욱 다채롭고 빠를 수밖에 없다.

  당시의 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해당사자 간의 계약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권리에 대해 정확히 명시함으로써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다. 미술계에 등장하는 저작권 관련 이슈는 공동저작에 관한 것이 있다. 복수의 아티스트가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사후에 저작권 소유에 관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별히 저작권의 귀속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경우에 분쟁은 감정싸움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에 원고 패소로 끝이 난 ‘도라산역 벽화 철거 사건’ 역시 계약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2007년 이반(작가)은 정부의 의뢰를 받아 도라산 역사에 벽화를 설치했고 2010년 도라산역 측은 부정적인 여론 등을 이유로 벽화를 작가와 상의 없이 철거했다. 국가의 작품 무단 철거로 예술인격권이 침해되었다며 작가가 소송을 제기한 경우다. 이 경우에도 계약서에 작품의 철거에 관한 사항을 미리 규정해 두었다면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는 예술에 빚이 있다. 백남준은 일방적 소통이라 생각했던 TV를 조작하려고 했고 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나라를 이으려는 시도를 했다. 백남준은 미래에 사람들이 개인 TV를 들고 다닐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을 소통을 위한 도구로 볼 때 백남준의 예상은 예리한 통찰로 봐야 할 것이다. 예술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사회의 수준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을 통해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의 예술에 대한 높은 이해와 관용은 예술 관련법을 진보시킬 것이고 이상과 이성의 간극은 한 걸음 더 좁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