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론장과 저널리즘의 위협 요소
2012년 10월 대법원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 요구를 받아들였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어지는 이 사건은 1991년 5월 서강대 건물 옥상에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소속 김기설이 분신하는 과정에서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해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던 사건이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꼭 한 세기 전 프랑스에서는 드레퓌스 사건이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내셔널리즘과 반유대주의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였고 이런 이데올로기적 시대상이 낳은 희생양으로 드레퓌스가 등장한다. 당시 프랑스 군부와 정부는 드레퓌스에게 독일 간첩협의를 뒤집어씌웠다.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역사는 프랑스 사회를 근대에서 현대로 옮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13년 만에 무죄 복권된 드레퓌스와는 달리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재심이 진행되고 있는 유서대필 사건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흔히 권력의 쏠림현상, 그리고 소통의 부재는 사회의 그림자로 인식된다. 공론장 이론을 통해 사회의 통합을 꿈꿨던 하버마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버마스의 공론장이론이 세상에 공개된 후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1 예를 들어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공론장에서 배제의 문제, 현실 정치를 생각하지 않은 평등한 공론장은 이상주의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서 주목해야 할 여지는 충분하다.
그는 공론장의 필요조건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근대적 교양 시민의 존재, 대중매체의 존재, 결사체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2 공론장에는 많은 교양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고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의제를 증폭시키면 각종 모임, 결사체들의 활동이 활성화 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첫째 필요조건으로 교양시민의 존재를 주장했다. 여기에서 하버마스가 첫 번째 필요조건으로 지목한 ‘교양시민’은 과거 전통적 신민에서 세 가지 변화를 요구한다. 신분제에서 벗어나 계약으로 성립되는 개인, 전통적 관계인 혈연·지연·학연에서 벗어난 개인,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개인이다.
송호근(2011)은 한국사회에 교양시민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한다. 그의 표현대로 ‘한국은 사회적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화에 훨씬 뒤진 격차사회의 한 전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격차의 원인으로 19세기 말에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급변을 이야기한다. 19세기 말 신분제가 폐지되고 한국에 결사체가 급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며 시민 사회의 움직임은 제약되고 언론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해방 후 우리 사회에 대한 모든 담론은 미·소 냉전체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분단 이후 이승만 정권의 포섭정치로 지식인, 시민 결사체는 정권의 입장으로 돌아선다. 이후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 강성권위주의로 시민운동의 흐름은 전방위적 운동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민주사회만을 위한 요구의 장이 펼쳐진다. 1987년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중산층 이상의 계급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노동 계급은 집단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분법적 이념투쟁의 장으로 공론장을 채운다. 이는 전 사회를 포함하는 담론을 생사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로 작동했다. 이 흐름이 우리 사회의 공론장을 왜곡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주요언론이 시민들의 의사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많은 시민들은 큰 두 흐름 중 하나를 선택,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언론은 권력화가 더욱 용이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정부, 재벌, 언론의 권력연대, 권력 트라이앵글을 형성시킨다. 몇 해 전 등장한 종합편성채널은 이 권력 트라이앵글의 산물이다. 송호근(2011)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언론 간 경쟁체제라는 얕은 논리로 종편을 옹호한다. 기존 국가 중심적으로 운영되던 공영방송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 채널의 증가, 그리고 경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표면적 논리일 따름이다. 지상파 3사의 행태를 보면 보수종편채널에 대비될 정도로 진보적 매체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종편의 등장으로 특정 정권의 성격에 맞는 채널수가 증가했을 뿐이라고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최근 KBS의 수신료 인상과 광고 포기는 채널수 유지를 위한 꼼수라는 견해가 나오는 것도 지상파와 종편이 한 흐름일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드레퓌스 사건과 유서대필 사건을 비교하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 세기 전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약자, 국가적 악인에게도 회생을 위한 공론의 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서는 명백한 악행에 대한 공론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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