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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

조선일보의 진심은 무엇인가

조선일보의 진심은 무엇인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조선일보는 참 많은 일을 했다. 채동욱 전 총장의 일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6일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라는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채동욱(54) 검찰총장이 10여년간 한 여성과 혼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11)을 얻은 사실을 숨겨 온 것으로 밝혀졌다.”라는 리드는 독자들에게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준다. 이 기사를 통한 폭로로 인해 채 전 총장은 총장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고 실제로 자진사퇴로 사건은 흘러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발생한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을 지휘하고 있던 총장을 흔들어야 할 만큼 그것이 중요한 이슈였는지는 모르겠다.

  조선일보사의 사시(社是)는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적시되어 있듯이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사시는 지금 우리사회에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문화건설’과 ‘산업발전’은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 동안에 두드러졌던 결핍에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각주:1] 나머지 두 사시인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이 언론의 기본적 역할로 읽힐 수 있다.

  ‘정의옹호’는 조선일보가 ‘민족의 으뜸가는 가치로서 정치적 정의, 경제적 정의, 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신념의 피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의옹호’에 대해 조선일보가 품고 있는 지향점의 일면을 tv조선의 보도행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각주:2] 지난해 11월 안철수 의원의 대선후보 사퇴에 반대하는 한 20대 청년의 투신 소동이 있던 당시 TV조선은 해당 청년과 전화연결을 통한 단독 인터뷰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 자신의 이야기만 오버랩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서 TV조선의 우선 지향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선정성’이다. 선정적 특종의 순간은 불통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소통의 시도는 눈물겹기까지 했다. 한편, 억지로 인터뷰를 이어가며 TV조선이 지키고자 했던 정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불편부당’은 좌파나 우파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가치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3일 방송된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이 지향점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날 방송에서 ‘80년 광주시청을 점령한 건 시민군이 아닌 북한 게릴라’라는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 탈북자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했다. 이날 방송을 통해 TV조선은 국가와 사회 전반이 인정하고 있는 민주화를 위한 5.18의 희생정신에 대해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었다.

  TV조선의 참신한 호기심은 채동욱 전 청장 사건까지 이어졌다. 채동욱 전 총장이 조선일보에 대한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할 때, 다른 방송사들이 취재진을 보내 이것을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자체 방송편성을 통해 채동욱 전 총장의 약점을 파헤치는 시도 또한 독특하다. 과연 조선일보의 사시는 웹페이지와 사내 문서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1.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는 사시에 대한 설명 중 문화발전은 ‘일제 강점기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된 조선 민중의 역사적 소임’으로, 산업발전은 ‘민족이 당한 온갖 수모와 수난이 산업부지에 있다는 당시 여론에 따라, 자생적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먼저 경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구적 소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문으로]
  2. TV조선은 언론사로서 지향점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영철학’에 있어 ‘작지만 강한 조직’을 지향하고 있고 이것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본사 인력의 최소화’, ‘외부업체와의 협업’, ‘조직운영의 효율 극대화’를 내세운다. 조선일보와 취재 소스를 공유하며 보도 기능으로 연명하고 있는 TV조선은 지면 보도보다 더 자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