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 시위(이하 ‘편파규탄 시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베’와 지극히 유사한 멘탈리티를 가진 워마드의 언어가 시위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3차 혜화역 시위에 비해 4차 광화문 시위에서는 패륜적, 비윤리적 언어가 많이 제거됐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리하여 시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은 실재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 시위 현장을 방문했다. 미디어의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현상을 판단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호선 지하철 안에는 시위에 참석하는 인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짧게 자른 머리, 얼굴을 가린 마스크, 반바지, 샌들, 검은색 혹은 빨강색 티셔츠 등 모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묘한 긴장감을 발산했다. 극기훈련 캠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고등학교 때 지각을 하고 학교 담벼락 옆을 걸으며 느꼈던 긴장감과 유사해 보였다.
광화문광장에는 수많은 메시지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대한애국당이 중심이 된 친박집회 참석자들이 광화문 주변 도로를 행진하고 있고 그 속에 편파규탄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집회현장 주변에는 경찰 펜스가 설치돼 있었고 그 주변을 경찰병력이 2중으로 감싸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 위에서 어지럽게 엉켜있는 행진과 집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계단을 내려가니 경찰이 협조해달라며 말을 걸어온다. 집회 주최 측에서 요청했다며 찍은 사진을 좀 보자는 요구였다. 불필요한 논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준 뒤에야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시위 현장은 대중가수 콘서트 현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통제됐다. 입구를 지나 성별 등 대략의 신분확인이 거쳐야 참석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시위 현장과 입구는 거리를 두고 있다. 역시 생물학적 남성은 입장이 불가능했다. 횡단보도 옆 그늘막 아래 서있었는데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여기 입장로니까 비키세요!” 반대편을 보니 붉은 티셔츠를 입은 여성 30여 명이 2열종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반복되는 메시지는 유튜브 등으로 접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들에게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사과, 각성해야 하고, 여경과 남경의 비율을 9대1로 맞추고, 몇몇 부처 장관을 여성으로 임명하라는 등의 요구가 계속됐다. 곧 탈코르셋을 상징하는 삭발식이 진행됐다. 삭발이 진행되는 동안 삭발 지원자 인터뷰가 이어졌고 간간이 환호성이 나왔다. 저녁 6시가 가까워오자 지방으로 돌아가는 버스 출발시간이 안내됐다. 주요 광역도시별로 버스를 대절해 참석한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도시별로 버스 출발시간이 되면 사회자가 안내멘트를 했다. “00지역 자매님들 이제 출발하셔야 된다고 합니다. 자이루~.” 현장에서는 연대감과 절망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비명에 가까운 절규를 쏟아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공감의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편파규탄 시위는 다른 집회, 시위와 다른 점이 있었다. 보통 집회, 시위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탈코르셋이라고 부르는 외적 변화에 치중한 모습이다. 자신이 처한 불합리의 중심에 외모가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탈코르셋이 ‘꾸밈노동을 끝내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들 사이에서 외모가 갖는 의미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또한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외모는 일정한 사회적 기능을 한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은 비단 섹슈얼 포인트를 자극하는 것 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많은 경우 외모를 통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역할, 특성,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또 제한적이지만 외모는 삶에 도움을 준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맛집 사장님일수록, 문신이 많고 험상궂은 외모를 가진 조폭일수록 자신의 목적,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높아진다. 즉 어떤 개인이 외모를 가꾸는 것이 이성에게 소비되거나 착취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사고, 행동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외모에 집착할까. 외모에서 자유로워지면 여성 보편이라는 범주를 확장할 수 있을까. 외모의 평등은 그 자체로 실현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외모라는 요소는 여성들 사이에서 일정한 장벽으로 기능했다. 외모를 가꾸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를 기준으로 한 차별에는 대부분 반대하겠지만 외모가 사회생활에서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흩어져 있는 것은 현실이다. 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을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채 소외된 주체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약자 중에 약자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의 좌절감과 외로움, 그리고 분노는 어느 방향으로든 발전할 수 있다. 남성 일반에 대한 공격성은 언제든 실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특정 여성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엽기적인 게시물을 올리고 댓글로 소통하는 모습은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전조와 유사하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은 범인인 김모 양과 공범인 박모 양이 SNS를 통해 일종의 역할극을 하다가 이것이 실제 범행으로 이어진 경우다. 대중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게시물을 공유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계속되다가 현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세력에게 이용될 가능성도 크다. 이미 워마드 사이트에는 탄핵 당한 박근혜씨의 업적을 기리는 게시물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달님’이라고 칭했던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박근혜의 ‘혜’를 ‘해’로 바꾼 ‘햇님’이라는 호칭이 두루 사용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유X무죄 무X유죄, 여자라서 탄핵됐다’는 메시지도 노출되고 있다. 보수단체 엄마부대 대표로 이름을 알린 주옥순씨가 올해 4월 ‘여성정책문화협의회’를 발족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씨 등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보수집회들이 그러했듯이 연대인 듯 연대 아닌 연대 같은 활동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다.
편파수사 논란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하다.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 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무관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이 분리된 개인이 아님을 확인하는 장으로 시위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현실 개선에 대한 의지는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보편적 시위, 집회는 공중에 개방되어 있고 참여를 독려해 메시지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편파규탄 시위는 고립된 공간에서 절망을 공유하고 분노를 표출하며 외로움을 위로하는 장으로 기능할 뿐이다.
시위가 끝나갈 무렵 출입구 근처에는 여경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위 현장을 떠나던 한 참석자가 여경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짧은 머리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가 반쯤 남은 1.5L 생수통을 여경들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깨끗하게 먹은 건데 필요하면 드시라고요. 그냥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그가 물을 건넨 행동에는 분명히 선의가 담긴 것으로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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