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서민의 삶을 지키고 약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정의당은 약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집단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해왔다. 경제적 약자인 서민,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을의 처지 개선이 필요하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그동안 한국 정치 풍토에서 진보정당이 가졌던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 같으며, 변하지 못할 것 같다.
최근 정의당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리얼미터와 한국갤럽 조사에서 10%를 넘기며 최근 10년 동안 가장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정의당은 이런 추세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 12일 발표된 이정미 대표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문에 최근 지지율 상승에 대한 기쁨과 자신감이 짙게 묻어있다. 그 중에서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현재 정의당 두 자릿수 지지율에는 ‘개혁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벽’이 돼달라는 요청과, ‘저 정당으로 진짜 내 삶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미 대표 본인의 감상인 만큼 특별히 딴죽 걸고 싶지는 않지만 ‘판이 우리에게 기울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음은 확인할 수 있다.
‘정의당 지지율 10% 돌파’라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몇 가지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민주당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원내 정당 중에서 정의당과 가장 비슷한 메시지를 내는 곳은 단연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집권한 지금, 정의당의 정치적 지향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큰 시점이 된 것이다. 정의당의 ‘지당한’ 사회적 요구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바람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제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한 것에 대한 세력 결집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최근 보수진영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 편의점 점주들을 중심으로 정부에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의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만큼 보수진영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지율 상승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정부 여당을 비판하면서 지지율이 상승한 측면이 있다. 최근 진보진영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이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의당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다시 이정미 대표 기자회견문으로 돌아가보면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먼저 살려야 경제도 살아난다’는 지난 70년 낡은 패러다임으로 또다시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유보시키고 있습니다.”라며 정부가 개혁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크기가 정해진 파이를 나눌 때 상대방의 흠결을 부각함으로써 보다 많은 조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종합해보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으로부터 약점을 공격당해 궁지에 몰려 있을 때, 비판을 통한 ‘차별화’에 나서면 손쉬운 지지율 상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여부를 떠나 정의당이 이런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의당을 포함해 진보정당들은 과거 적폐에 대한 안티테제로 기능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독제 통치와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 보수 기독교 권위주의의 폐단에 반대하며 그 존재의의를 찾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과거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 수구세력이 득세할 때에는 주목받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유시민 작가의 설명에서 왜 그런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을 품으려면 어때야 돼요? 가슴이 넓어야 되잖아요. 그 작은 가슴에 이 큰 세상의 온갖 문제를 껴안고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아픈 거야. 그러니까 자기가 아프기 때문에 남한테 상처를 많이 줘요. 정의당은 가슴이 너무 작아서 큰 세상을 끌어안으면 자기도 피 흘리고 남들도 상처 줘요.”(김어준의 파파이스#144)
대중의 지지를 안고 거대한 세력에 대항해 싸우기에는 그릇이 크지 않다는 평가다. 그리하여 국민 다수의 변화 요구는 민주당에게 쏠릴 수밖에 없고 정의당이 이 흐름에 편승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국민들은 이상 보다 현실을 중시한다. 90%를 얻을 수 있는 도박보다 60~70%를 얻을 수 있는 보장에 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2016년 버니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를 고민했다. 사회주의자를 자임했던 샌더스가 정치적 입장이 다소 다른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자본가들에게 거액의 후원을 받는 민주당이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대권을 위한 현실적인 길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것이라는 지적이 부딪혔다. 결과적으로 샌더스가 무소속 출마가 아닌 민주당 경선에 몸을 던진 것은 90%의 도박보다 60%의 보장을 택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정의당은 ‘제1야당이 목표’라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현재 지지율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이 야당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보수세력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므로 정의당이 제1야당 지위를 차지하려면 100석 이상 얻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할 것이다.
야당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 존재한다. 여당의 주장과 요구가 합당한지 의심하고 반대함으로써 국가 운영의 실패를 최소화하는 방어적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야당’이 되겠다는 정의당의 포부가 정부 여당에 가장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길 바란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무책임이 아니길 바란다. 현 정부의 실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망각하는 정치세력이 아니길 바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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