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탈뺄셈정치

뺄셈의 정치를 거부한다+(4) ‘극중주의’의 교훈

 


  처음 자연인 안철수는 선한 영웅으로 대중 앞에 섰다. 그가 2009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후 기존 양당체제의 피로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인물로 안철수가 부상했던 이유다. 정치권은 이미 썩었으며 지난한 정치놀음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안철수는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졌다.

  자연인 안철수는 늘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국내 최고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해 28세에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이 됐다.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88년부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고 V3를 무료 배포한다. 여기에 더해 직원들에게 자신의 주식 일부를 무상 분배했다거나 외국 기업의 안철수연구소 인수 제의를 거절했다는 미담도 있다. 2008년 미국 와튼스쿨 EMBA 취득을 위해 유학을 결정하며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학을 마친 뒤에는 국내 최고 대학들이 앞다투어 모셔가고자 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이상은 자연인 안철수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스스로 밝혔던, 위인전에 나올법한 이력들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번졌는데 50%에 가까운 시장 적합도를 얻었던 안철수는 5% 적합도를 기록하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하고 지지를 선언했다.

  본격적으로 여의도 정치판에 뛰어든 2012년 대선 직전까지도 그는 대중들에게 개혁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대중과 넓은 접촉면을 가졌던 그는 강연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했고 대기업의 탐욕을 질타하기도 했다. “경제사범들을 사형시키면 왜 안 되냐는 주장은 진보진영 정치인도 쉽게 하지 못하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2018년 지금 대중들에게 각인된 안철수의 이미지는 완전히 반전된 상황이다. 어리숙하고 미덥지 못한 정치인, 딱 그 정도다.

  (현재까지) 정치인 안철수의 실패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안철수 현상에서 대중들이 기대했던 것은 정의롭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이었다. 먼저 정치인 안철수는 정의로웠을까.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정치인들의 행동에는 명분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인 안철수가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명분을 가지고 행동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박원순 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던 것에 명분이 있었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를 포기한 것에 명분이 있었나.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다시 뽑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총선을 앞두고 탈당한 것에 명분이 있었나. 호남유권자의 지지를 엎고 국민의당이 2014년 총선에서 38석을 얻었지만 지지기반을 버리고 보수세력인 바른정당과 합당한 것에 명분이 있었나. 여기에 대해 안철수가 다수 국민이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정치인 안철수는 성공했나. 성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이미 여의도 정가와 언론에 많이 회자 되고 있는 말, ‘안철수와 1년 이상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꼬리표다. 정치인 재목은 아니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능력도, 끌고 갈 매력도 없다는 지적은 그의 입지를 점점 더 좁게 만들고 있다. 안철수가 극중주의를 말했을 때 대부분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운데로, 또 가운데로그리하여 결국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하자면 본인을 중심으로 중도 진보세력과 중도 보수세력을 규합하여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자는 뜻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기편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의 주장이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극중주의는 오히려 안철수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가운데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안철수. 우리 개개인은 모두 지구의 한가운데에 서있지 않은가.

  바둑에서 기권을 하는 행위를 돌을 던진다고 표현한다. 하는 데까지 돌을 두어보다가 더 해볼 여지가 없을 때 비로소 돌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패배를 인정하는 데에도 명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최근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를 보며 돌을 던질 대목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지쳐 보이고 외로워 보였다. 그의 멘토들도 그의 정계 은퇴를 충고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지방선거 이후 당직자들에게 실패해도 원래 그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일을 다시 계속 하려는 용기가 중요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하며 정계은퇴설을 일축했다. 아직 해볼 여지가 남아있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안철수의 극중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