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6272.html
자주 방문하던 커뮤니티에서 홍세화 선생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보았다. 글 작성자의 주장에 찬동하는 반응들이 다수 보였다. 어떤 글이었을까 궁금하여 홍 선생의 글을 볼 수 있는 주소를 댓글로 요청했고 곧 누군가 친철히 댓글을 달아주었다. 홍 선생 칼럼의 제목은 “‘생각하지 않는 교육’과 확증편향”이었다. 부정감정과 부정감정이 연결된 꽤 강력한 제목이다. 그의 인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몇 가지 있지만 대체로 귀 기울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두렵겠지만 일독을 권한다.)
먼저 홍 선생 인식과 다른 점을 먼저 확실히 하고 싶다. 먼저 조국 가족의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다. 홍 선생은 조국의 자녀들이 학적이라는 문화자본을 취득하는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 이 사회의 정치구조, 권력 구조에 대한 맥락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고찰은 반쪽짜리가 되기 쉽다. 애초에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은 검찰이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무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취재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국의 사모펀드 관련 금융 범죄를 의심했다는 것이고, 이후 조국 일가를 탈탈 털던 와중에 자녀들 교육 문제가 불거졌다는 맥락을 인식해야 한다. 검찰은 법을 다루는 기관이고 따라서 그들 행위 결과는 법적 테두리에서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엄청난 수사력을 조국 가족에게 집중 투입한 결과 탄생한 기소 내용은 그야말로 허무했다. 때문에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 아닐까. 따라서 조국의 자녀 교육 문제가 어떠한 사회계급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논의할 여력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조국에 대한 검찰의 ‘권한행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뉴미디어 지형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홍 선생은 뉴미디어의 영향력을 팬덤과 결부시켜 부정적 경향성을 지적했다. 일부 유명 인사들의 팬덤이 뉴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며, 기성 미디어를 위협한다는 평가다. 편향성에 대한 위험성은 공감하지만, 홍 선생이 들었던 예에는 토를 달 필요가 있어보인다. 먼저 유 이사장이 (검찰총장을)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했던 것은 당위에 관한 것이었다. 권력이 검찰을 탄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운영 원리상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혹은 법무장관)이 임명직인 검찰총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관한 것이다. 5개월 이상 수사가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는 검찰에 어떠한 제재를 하지 않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 결과물인 기소장에 담긴 내용만으로도 검찰이 얼마나 무리하고 무분별한 권력을 행사했는지 판단이 가능하다. 검찰의 과오다. 이러한 과오 재발을 막는 것이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책무다.
한편 홍 선생은 팬덤이 기존 매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무 구조가 취약한 진보 매체들이 팬덤의 눈치를 보면서 퇴보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항의하자 김정숙 ‘씨’에서 김정숙 ‘여사’로 대통령 부인 호칭을 바꿨다는 것.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에 대한 한겨레의 지칭은 절대 다수가 ‘씨’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서 동시에 읽어야 할 것은 기성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통적 매스미디어와 갈등했다는 사실 외에도, 시민들은 기사 생산 과정이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 때로는 정치권력에, 때로는 경제권력, 때로는 법 권력에 협조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때문에 호칭 논란은 팬덤의 실력행사일 뿐 아니라 기성 언론에 대한 변화 요구로 읽을 여지가 있다. 21세기 AI시대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러한 인식차이에도 불구하고 홍 선생 칼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있다. 미디어 메시지에 대한 신뢰 문제다. 어떤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 홍 선생은 ‘회의하지 않는 한국사회 풍토가 확증편향을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현 시점에 지극히 타당한 논평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극한투쟁과 정치세력 갈등을 이끌었던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의 책임이 크지만 현상 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사회구성원 사이에 인식의 골이 깊은 상황은 우려해야 마땅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 놓인 개개인은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타자화 하고 적대시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토양에서 자라나기 쉬운 것은 정치혐오와 극단적 정치세력이다.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정치, 사회적 갈등을 확산한 무책임한 세력을 심판하는 것이 시민들의 책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변화한 매체 환경 속에서 획득하는 정보에 대해 시민 스스로가 의심하는 태도를 갖는 것도 시민의 소양으로 권장할 만하다. 단순히 감정적 동요를 조장하거나 상대 정치세력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결코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온라인에는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무책임한 정보’도 많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안철수 전 의원이 ‘더강한국민당’을 창당한다는 게시글 하나에 아무런 의심 없이 수많은 게시글이 양산됐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 정보가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의 회의인 것이다. 그리고 이 ‘회의’의 또 다른 이름은 ‘부지런함’이 될 수 있다. 전통적 매스미디어의 정보력과 뉴미디어의 비평능력을 수평적 보완재로써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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