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페미니즘 논란’에 입을 열었다. ‘페미니즘 논란’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김태훈 팝칼럼니스트의 칼럼이 시발점이 됐다. 네티즌들이 이 칼럼에 대해 공분을 표했고 이재훈 한겨래 기자나 이택광 경희대 교수 등이 칼럼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한국 페미니즘의 방향성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이러한 논란의 과정이 일단락 된지 일주일여 후에 진중권 교수는 ‘안티페미니즘’이라는 문제라며 뒤늦게 사태를 정리했다. 하지만 진중권 교수가 이번 논란에 끼어든 것에서 뭔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공기 반 글자 반’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진중권 교수의 트위터_https://twitter.com/unheim)
먼저 시점이 부자연스럽다. 평소의 진중권 교수라면 ‘문제의 김태훈 칼럼’ 논란이 시작됐을 때 바로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뒤늦게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론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함량미달의 글에 대해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다가 시간차를 두고 접한 다른 몇 가지 글과 함께 언급한 것일 수 있다. 다음으로 이슈를 따라가기 힘들어졌을 수 있다. 이건 진중권 교수가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야기 한 내용인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고의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위 두 가지 추론이 설득력 없게 느껴진다면 그가 처한 환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중과 접촉면을 늘려가고 있는 현실 말이다. 진중권 교수는 jtbc <속사정쌀롱>, 진보당의 팟케스트 프로그램 <정치카페> 등 대중적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대중성을 지켜야하는 진보 진영의 학자로 포지셔닝된 것이다. 대중에게 비춰지는 이미지는 프로그램의 최종 마침표를 찍는 제작진이 완성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대중이 보기를 원하는 진중권 교수의 모습이 포함된다. 대중성을 얻는 대신 프로그램 속 이미지를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깨지 않는다는 암묵적 계약이 성립되는 과정이다. 그가 대중성을 잃는다는 것은 해당 프로그램의 관계자, 소속 정당, 시청자에게 모두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논리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과도한 페미니즘’의 경계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의 가정으로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 세력이 미약함을 깔고 들어갔다. 이것은 김태훈의 칼럼이 공개된 이후 네티즌들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동민식 표현으로 ‘뱃속 편한’ 말이다. 만약 페미니스트 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면 페미니스트 세력이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점도 지적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약하다는 것은 담론이 공론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다시 기존 시스템의 고착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가 남성 중심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 시스템에 맞춰진 상태로 차별을 받고 있는 세력의 불만이 표출될 것이다. 한 예로 남성 중심의 시스템에서 남・여의 역할이 차별적으로 규정될 때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여성에 의한 남성 역할의 규정이다. 경제력이나 외모에 관한 것들 말이다. 데이트를 할 때 남자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관념이 남성들을 향한 요구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미약한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얼빠진 것이고 공격의 근저에 안티페미니즘의 극성스러움이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을 잃는다. 페미니즘 운동은 구심점을 잃었지만 여성들은 나름의 각개전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이자 학자인 진중권 교수가 타이밍과 논리를 잃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가 일선에 나서 대변하고 있는 세력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대중적 진보주의는 외줄타기를 보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인다. 특히 대중매체를 통한 진보주의는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따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관용적 태도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진보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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