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건조한 날을 생각해봅시다. 지푸라기가 바위에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을 것 같은 메마른 산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런, 방금 마른 나뭇가지 하나에 불이 붙었습니다. 불씨는 점점 위세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나무에 먼저 불이 옮겨 붙고, 또 바로 옆 나무로 불이 옮겨 붙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소방대원들이 재빠르게 출동했습니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립니다. 저 멀리 헬기 소리도 들립니다. 헬기로도 물을 뿌리려는 모양입니다. 한 쪽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불길 주변의 나무를 베어내고 있습니다. 산불이 발생하면 모든 수단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상식입니다.
우리는 경제 위기라는 산불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지역의 시장은 선거사무로 여력이 없다며 선거가 끝나면 지원을 하겠다고 합니다. 기획재정부는 소극적인 추경안을 내놓았다가 질타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자금 직접 지원에는 미온적인 입장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지원방안은 4인 가족 기준으로 100만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니 1인당 25만원 가량입니다. 그것도 소득 하위 70% 가량을 선별해서 주겠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여당 지도부와 격론 끝에 기재부가 물러섰다죠. 이 안도 총선이 끝나고 4월 말에 추경안이 처리되고 5월 중에야 집행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쟁점은 ‘소득 하위 70%를 어떻게 선별할 것이냐’에 집중됐습니다. 소득으로 끊을 것인지, 그렇다면 어느 시점의 소득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재산 보유 상황도 고려할 것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이러던 와중에 선별 없이 지급하고 내년 세금 정산을 할 때 고소득자에게 특별명목세를 걷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하위 70%를 추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또한 흔쾌하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자 시각에서 보기에는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수혜를 받는 사람들 입장에선 자칫 ‘부담스러운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추후 특별명목세를 도입하는 것은 하위 70%를 선별을 갈음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만 설계되겠지만 얼마든지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얼마가 됐든 추후에 갚아야 하는 돈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정책 효과는 반감됩니다. 국민의 2% 가량만 해당되는 종부세에 어떠한 오해가 덧씌워졌었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공무원들은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추가 납부해야 하는, 그러니까 환급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토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갖는 불만이 적지 않다는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초 소득공제 방법이 바뀌면서 세금을 오히려 더 내야하는 대상이 폭증했었죠. 당시 한국경제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15일부터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가 시작되고부터 직장인들의 한숨소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월급명세서가 나오면 `유리지갑` 인 직장인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정서상 지원은 지원으로 끝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국민 절대다수는 본인이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내후년 3월에 대선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죠. 오직 이 방법뿐이라면 돌파하는 것이 정도겠지만 피할 수 있는 정쟁은 피하는 것이 좋겠죠.
애초 선별적 지원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경제적 효과를 인식한 때문이었겠죠. 중상위 소득자는 직접 자금 지원을 해도 바로 소비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때문에 상대적 저소득층, 취약계층에게 지원을 집중할 수 있다면 효과가 크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원하는 재원 이외에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30%에 포함되지 못하는, 혹은 의도치 않게 누락되는 사람들의 박탈감, 선별의 적절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 제기, 세율 상승 우려에 따른 조세 저항 등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계속 돌출할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착각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불을 끄는 것이지 어떻게 끄는지가 아닙니다. 불을 끄려다보면 불이 붙지 않은 나무에도 물이 뿌려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문제를 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부담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려는 절박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즉 다시 말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골고루 정부 정책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전국민에게 똑같은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겠죠. 우리는 이미 보편적 무상급식 논쟁을 치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굳건히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지원금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을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불을 끄는 데 몇 대의 소방차가 동원됐는지, 헬기는 몇 대가 떴는지, 물은 얼마나 썼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을 껐느냐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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