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전해드리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달의 신이 거하고 있는 ‘청색 성전’을 몸에 두르고 있다. 그는 ‘노란 바람개비의 신’과 ‘달의 신’의 말씀이 담긴 ‘성서’를 늘 드러내며 자신이 적자임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신들을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 필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는 온화한 표정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스스로의 언어를 일본 회칼인양 휘두르고 다닌다. 그는 스스로를 언론인이라 칭한다.
그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다. 그는 SNS를 통해 대중에게 설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등 당시 정부여당 실세들과 기타 보수세력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주된 내용이었다. 특히 대중들은 그의 직설적인 욕설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인으로서 그런 저급한 수준의 욕설을 내뱉는 자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름의 쾌감을 주었던 것이다.
한데 그의 진면목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달의 신을 섬기는 ‘진짜 신도 감별사’ 역할을 사실상 자임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그는 여권 유력 정치인들과의 접촉면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보진영에서 존경 받는 언론인 등 유명인들과의 스킨십도 늘렸다. 그는 이들을 등에 업고 대중을 향한 자신의 메시지 영향력을 키우길 원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그의 언행이 그가 스스로 섬기는 그의 신과 매우 달랐기 때문일까. 신도들은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진영 내 정치인, 유명인들도 그와의 스킨십에 부담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의 언어는 진보진영의 언어라기보다는 보수진영의 언어에 가깝다. 조지 레이코프의 ‘엄격한 아버지’-‘자상한 부모’ 모델로 분석하면 그의 언어는 ‘엄격한 아버지’ 프레임에 속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하며,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제대로 교육’한다. 보수는 ‘적’을 설정하고 진보는 ‘우리’를 강조한다. 보수는 단편적 사안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진보는 그것을 아우르는 맥락의 가치를 논한다. 그의 언어는 보수의 언어다. 그는 계속해서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달의 신’을 해할 누군가가 안과 밖에 상존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안에 있을’ 적에 대한 적대심이 유독 두드러진다. 문제는 그가 규정하는 내부의 적이라는 잣대가 매우 주관적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자신과 가까우면 독실한 신도, 그렇지 않으면 고약한 적이 되는 식이다. 한때 독실한 신도였다가도 조금 거리를 두면 곧 고약한 내부 총질러가 되기 십상이다.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가 보수 성향 언론사에서 보수의 언어를 체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터넷언론사는 보수적이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많은 인터넷언론사는 배너광고 이외에도 대기업 후원이 재원조성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언론사들은 대기업에게 호의적인 기사와 광고를 연계한 공생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어떤 언론사들은 광고 수주가 적은 기업들을 압박하는 방편으로 해당 기업을 공격하는 기사를 (어떻게든) 생산한다. 공생하지 않는다면 무차별 공격하겠다는 공포심을 심으려는 것이다. 해당 기업의 언론 관리 조직은 이 언론사와 다시 접촉할 수밖에 없고 광고 재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가 최근 여당 인사들뿐만 아니라 여당 전체를 비난하는 모습은 이런 언론의 행태와 매우 비슷하다.
기성 언론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진보진영 언론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배타성이 두드러진다. 그는 진보진영을 하나의 시장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이 새 시대의 적통 언론인이라고 생각하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는 기성언론 특히 진보성향 언론을 향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는 ‘노란 바람개비의 신’이 보수언론 뿐 아니라 진보언론에 의해서도 공격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 진보언론에 대한 자신의 분노와 거부감은 지극히 온당하다고 강변한다. 자신은 이런 언론과는 다르다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때때로 이들에 대한 공격성도 드러낸다. 기성언론의 유명 언론인, 가령 손석희, 김어준 같은 사람들을 발아래 둔 채 자신이 가장 믿음이 굳건한 단 한사람으로 여겨지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손석희와 김어준이 아주 긴 시간동안 사회구성원들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았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콘텐트를 시청하는 자들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노동계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감추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 인터넷 언론에서 기업 사주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를 썼던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노동계와 접점이 없다. 따라서 노동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들을 적폐라 비판하고 각을 세우는 것이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 면에서 더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데 그가 섬기는 ‘노란 바람개비의 신’과 ‘달의 신’이 노동계를 버린 적이 있던가. 노동계의 비판에도 그들을 설득하려 노력했으며 그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없었다.
그의 태도는 그가 섬기는 신들과 아주 다르다. 따라서 그의 행태가 오롯이 신앙을 위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가 ‘진짜 신도 감별사’ 역할을 하며 진영내부 결속력을 약화하고 있는 지금, 그가 섬기는 신은 세계 각국을 돌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우군을 모으고 있다. 그들은 과연 100% 우군이던가. 그가 믿는 신은 세계 시민들이 100% 우리편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힘까지 모아 뜻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쯤에서 그가 섬기는 신들과 가까웠던 양정철 전 비서관이 책을 통해 회고한 대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온라인 토론과 댓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데 고민이 깊었다. 특히 선거 상황에서 강력한 결집력을 지닌 온라인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무척 고마운 분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극히 일부는 인터넷 공간에서 지지 성향이 다른 네티즌들에게 배타적 폐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편으로 큰 부담이었다. 결국 그것이 당내 경선 기간에 다른 후보들이 문 후보를 비판하는 소재가 됐다.
많은 이들은 온라인 지지자들의 강력한 비판 댓글이 문재인 캠프와 연계된 조직적인 것으로 오해했다. 보다 못한 문 대통령이 먼저 지지자들에게 ‘선플’ 운동을 전개해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누군가를 향한 뜨거운 지지는 경쟁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보다 지지 후보를 향한 포지티브로 표현해야 한다. 배타와 배제의 논리, 타도와 공격의 언어는 진보의 정신일 수 없다. 짧게 경쟁하고 오래 통합해야 야권이 이길 수 있다”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하지만 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문 대통령을 온라인에서 비판하는 글도 있었다.”
(양정철의 <세상을 바꾸는 언어> 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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