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고립 시도가 한창이다. 지난 15일 황교안 총리가 성주를 방문했을 때 성주군민들에게 가로막혀 발이 묶인 일이 있었다. 당시 많은 언론은 황 총리의 유고상황이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대통령 부재시에는 총리가 대통령 대행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총장은 감금이 아니라고 국회에 밝혔고 현장에서도 총리와 군민 대표들이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 보도를 보면 종북세력이 성주에 이미 침투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15일 시위 현장에서 나온 발언을 문제 삼았다.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북핵의 의미를 오도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표현에 집중했다. 당시 한 발언자는 “북핵은요, 저희하고 남쪽하고 싸우기 위한 핵무기가 아닙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저희’라는 표현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는 외부 종북세력이 성주군에 침투해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발언자는 군민들의 문제제기로 현장을 떠났다고 상황을 묘사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제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누구나 영상을 한번만 봐도 알 수 있다. 먼저 문제의 ‘저희’라는 표현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까.(03:43) 영상에서 ‘저희’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남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조선일보>에서 집중한 ‘저희하고 남쪽하고 싸우기 위한’이라는 문장의 의미는 ‘저희와 남쪽이 싸운다.’는 것이 아니라 ‘저희, 남쪽하고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분위기에 대한 묘사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기사에서는 발언자가 항의를 받고 물러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발언의 취지에 동감하는 분위기가 다수였다. 오히려 항의를 했던 군민이 ‘성주가 아니면 사드는 괜찮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더 강한 항의를 받는다.(08:20) 당시 군민 대다수의 주장은 ‘성주에도 안 되고 한반도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의 효과는 두 단계로 나타난다. 우선 성주를 전국적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미 종북주의자 혹은 전문시위꾼들이 개입돼 있기 때문에 성주에서 나오는 반발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주 내부를 분열시킨다. 순간 말실수하면 친북반미, 지역 이기주의로 몰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자기검열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런 반응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 결국 내부 갈등으로 수렴될 것이다. <조선일보>가 악의를 가지고 이 기사를 냈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잘못된 보도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발언자가 종북주의자로 몰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에 대한 취재를 추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는 보도라 할 수 있다.
사드 입지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나왔던 반응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1번 찍더니 잘됐다.”는 식의 반응 말이다. 소위 진보성향 커뮤니티라는 곳에서도 이런 반응이 나온다. 만약 이것이 인과응보라면 사드 배치는 해피엔딩이라는 말인가. 성주가 작은 시골 마을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여론전에서 고립되는 데에는 이런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편을 나누는 프레이밍은 지엽적 요소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사드 같은 거대한 이슈가 나왔을 때 지역 이기주의, 총리에 대한 물리력 행사, 외부세력 침투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잘 안 보이는 것이 정상적 사회가 아닐까.
조선일보 : 성주 사드 반대 집회 참가자 '북핵 옹호' 취지 발언 동영상 논란
동아일보 : [속보] 경찰 “성주 사드설명회 폭력사태에 외부세력 개입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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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단독]조선일보 외부세력 지목된 염씨 “난 성주서 15년째 살아···대부분 나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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